등록 : 2008.06.10 19:05
수정 : 2008.06.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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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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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레이거노믹스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레이건 당시 미국에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가 없었고,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집단소송제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잘 갖춰져 있었다. 금산분리는 철저하게 지켜졌고, 기업의 범죄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처벌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은 미국에서 시장규율이 제대로 정립되기 전인 1920년대의 친기업 정책인 ‘후버주의’와 비교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우연인지 아니면 한국도 같은 역사적 여정에 들어선 탓인지, 후버와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공통점을 안고 있다. 후버 대통령도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자수성가하여 세계적인 광산 개발자로 명성을 날리며 젊어서 큰 부를 축적한다. ‘위대한 기술자’로 불리며, 기업의 효율성에 대한 신념과 조직을 관리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 넘쳤다. 퀘이커교도였던 그는 공익을 위한 봉사, 자기희생 정신에 철저하여 공직에서 발생한 수입은 모두 기부했다. 대규모 운하와 댐의 건설을 통한 경제부흥을 추진한 것도 유사하다.
당시 거대 기업집단에 대한 적절한 통제 문제가 제기됐지만, 후버는 기업의 효율성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정부 간섭을 최소화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보다는 자발적 협조와 관리를 통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하는 조합국가론을 피력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야 한다는 모순적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 거시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면서 쉰다섯 품목의 가격을 관리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8년 동안의 상무 장관 시절에 후버는 노동부가 기업 활동을 제약하지 않도록 했으며, 법무부 반독점 부서의 기능도 축소시켰다. 기업들의 담합 가능성이 커졌지만 기업에 대한 기소는 크게 줄었고, 규제 기준을 결정하는 데 기업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했다. 당시 재무장관은 대부호 출신인 멜런이었다. 대기업과 부자의 소득을 증가시켜 성장을 촉진하고자 대대적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친기업·친부자 정책으로 기업의 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노동자의 소득은 늘지 않아 극심한 부의 불균등을 낳았다.
1929년 압도적인 지지로 후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증시가 폭락하며 사상 최악의 대공황을 맞게 된다. 친기업적인 후버의 대책은 사태를 악화시켰는데, 자기희생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켜 달라는 후버의 기대와는 달리 증권가의 대자본가들은 자기이익 챙기기에 바빠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후버는 작은 정부론을 고집하며 30%가 넘는 실업자들의 고통을 방치했다. 양극화와 높은 실업률에 따른 소비 부진은 공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섰고, 재선에 도전한 그는 루스벨트에게 참패했다. 루스벨트의 대대적 개혁정책으로 미국은 안정적 성장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친기업이 아닌 시장의 공정한 규율이 작동하도록 정책을 편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 심화되는 양극화, 고유가로 말미암은 인플레이션 등 최악의 경제 환경에서 이명박 정부는 섬뜩할 정도로 후버의 정책을 재현하고 있다.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오직 재벌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의 친기업 정책인 후버주의가 초래한 대공황과 같은 끔찍한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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