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전 방송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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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특보사장단’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방송 장악을 위한 ‘이명박식 낙하산부대’를 이르는 말이다. 특보사장단에 거론되는 사람은 <와이티엔>(YTN) 구본홍씨, <아리랑 국제방송> 정국록씨, <스카이라이프> 이몽룡씨, 한국언론재단 최규철씨 등이다. 거론되는 전원이 ‘이명박 캠프의 방송 혹은 언론특보’였다. 이미 특보 출신 양휘부씨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한국방송 사장으로 거론되는 김인규씨 역시 이명박 캠프 출신이다. 심지어 <교육방송> 사장으로는 지난 선거 때 공천에서 탈락한 한나라당 이재웅 전 의원이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하니 한마디로 ‘촛불’이 웃을 일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독재자들은 노골적으로 방송을 장악하고 당근으로 길들였다. “땡전뉴스”는 길들여진 방송의 수치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6월 항쟁 이후 전개된 방송 민주화 투쟁의 결과 권력과 방송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화했고, 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통합방송법이 옛 방송위원회를 무소속 독립기관화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문화방송 사장 인선 과정에서 권력이 민다고 의심되는 후보 대신 신망받던 언론계 인사가 선출된 것이나, 참여정부 초기 대선 캠프 언론고문 출신이 한국방송 사장에 임명되었다가 낙마한 것 등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3년 참여정부가 캠프 언론고문을 한국방송 사장으로 임명했을 때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한목소리로 “공영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요지로 비판했다. 지금 여당이 된 한나라당 인사들은 말을 바꾸어 “캠프 출신이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선출 과정의 정당성 문제를 지적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 속에 진행되고 있는 와이티엔 밀실 사장선임에 대해 한나라당은 또 어떤 궤변을 늘어놓을 것인가. 참여정부 시절 ‘공영방송의 코드인사’ 운운하며 각을 세웠던 보수언론들은 입에 재갈을 문 모양이다. 지난 10년 동안 작은 인사 실패도 침소봉대해 코드인사라 비난했던 보수언론이 ‘특보사장단’을 낙하산 부대로 투하해도 눈감아주는 것을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11일 “어젯밤 열린 6·10 민주항쟁 집회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며 스스로 ‘민주화 1세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혹시 “이 지경이 된 것은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탓이다. 빨리 방송사를 장악해야 촛불 소나기를 피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지난 12일 나온 검찰의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표적 소환’ 예고는 또다시 ‘대통령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방송 민주화는 우리 사회 민주화의 한 상징이다. 방송을 포함한 언론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생명으로 한다. 국민 편에서 권력을 비판하며 민주주의를 지킬 때 방송과 언론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 ‘나도 민주화 1세대’라는 이 대통령 말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이 대통령은 당장 방송을 ‘특보체제’로 바꿔 장악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비정상적 특감으로 방송법이 정한 임기를 무시한 채 내부 구성원의 비리를 낚아채 한국방송 사장을 압박하려는 ‘간계’를 거두어들여야 한다. 검찰의 ‘표적 소환’도 중단해야 한다. 방송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이미 누리꾼들이 한국방송 앞에서 촛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만일 이 정부와 한나라당이 구시대적 방송 장악행태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민 모두 기꺼이 방송 장악 저지를 위한 촛불을 들 것이다. 이 정부 출범 100여일, 국민들은 40여일 동안 매일밤 촛불을 들어야 했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이명박을 뽑았다는 ‘원죄’로 고달파해야 하는가.최민희 전 방송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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