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1 19:28
수정 : 2008.07.1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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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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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에서는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져서 우리나라 사람의 화를 돋우는 일이 있다. 독도 문제를 비롯하여 이러저러한 쟁점을 둘러싼 일본 우익 정치인의 망언이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까지 역사 사실을 왜곡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최근 국내 일각에서 이런 일본 국수주의를 흉내낸 이른바 ‘대안교과서’가 편찬되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 하나가 한-일 합병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새역모’의 교과서는 “한-일 병합은 그것이 실행된 당시로서는 국제관계의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일 합병은 실질적으로는 군사력을 동원한 위협의 결과였지만, 외교조약이라는 형식을 빌려 합법을 가장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외견상 합법적으로 조선을 합병시킬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인 내부에 협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는 을사오적·정미칠적 등 매국조약 체결에 가담한 능동적 내부 협력자도 있었지만 책임 있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지 않은 수동적 내부 협력자도 있었다. 한-일 합병 당시 좀더 완강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 국권을 송두리째 넘긴 것이 100년 뒤인 오늘날까지 일본 사람들이 엉뚱한 소리를 할 빌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에 대한 징벌, 즉 친일 청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반민특위가 와해된 지 60여년 만에 친일 청산의 과제가 다시금 제기되어 현재 그 작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로부터 시간이 너무 흘러서 당사자 대부분은 이미 숨을 거두었다. 따라서 친일 청산 작업도 이들의 이름에 흠집을 남기는 것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당사자는 죽고 없지만 그들이 남긴 역사적 장물인 친일재산은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7월13일 출범 두 돌을 맞이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친일재산을 찾아내 국가에 귀속시키는 일을 하고 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에 대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을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 위헌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 주장의 핵심은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에게 죄를 묻는 연좌제의 적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친일재산은 역사적 장물이므로 취득 자체가 원인무효이다. 원래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에게 죄를 씌우는 것이 아니다. 결코 연좌제의 부활이 아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은 여태까지 친일재산을 끌어안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반면에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연좌제 적용이라고 우기는 것은 너무나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제강점기에 소유했던 재산 대부분은 이미 처분되어 현재 국가에 귀속시키는 재산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니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사적 정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후손들도 이를 흔쾌히 청산하고 미래의 역사 대열에 동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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