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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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가 환율안정을 위해 달러를 내다 팔면서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었다. 정부가 경제 안정화를 추구하겠다고 표명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환율상승을 기대하고 달러를 사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으로 넘어간 느낌이다. 금리인상의 가능성이 배제되어 우리나라 돈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달러 수요가 진정될 수 없고 이는 자연히 외환보유액의 소진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동결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간다. 극심한 대내외적 불확실성 속에서 그동안 어쩔 수 없었겠으나 이제는 ‘불확실성’에도 익숙해질 때가 되었다. 적어도 거시경제와 민생안정의 최대 위협요인이 물가상승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해지고 있지 않은가. 물가상승 기대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만약 금리동결이 지속된다면, 그것이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다. 명목금리를 동결한다 하더라도 물가를 고려한 실질 정책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금리를 놓아두는 것 자체가 안정화 의지의 결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환율안정도 어렵게 하면서 안정화 정책 전반의 실효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금리인상은 경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가계부채도 걱정된다. 그러나 실질 정책금리를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하는 정도의 대응은 긴축이라고 부르기에도 불충분하다. 부채 문제도 낮은 실질금리를 오래 유지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키워 나중에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지금 약간의 금리인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나중에는 초강력 긴축으로도 어쩔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는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과도한 통화긴축을 통해 실질금리를 필요 이상으로 높여야 했고, 일본도 80년대에 금리인상을 충분히 하지 않은 대가로 이후 충격적 금리인상과 버블붕괴를 겪어야 했다. 현재 세계경제의 불안도 상당 부분 지나친 저금리에 그 뿌리가 있다. 불안해진 경제를 다시 안정화시키기 어려운 것은 물가상승 기대가 일단 자리잡으면 경제의 전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켜 이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거품이 부풀고 임금과 가격이 조정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사회적 갈등도 심화된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는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지금같이 열악한 정책여건 속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안정화 정책의 고통과 비용을 되도록 줄여서 그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안정화 의지에 대한 신뢰가 가장 절실하다. 신뢰가 없으면 약간의 긴축이나 의사표명 정도로는 시장을 따라오게 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과도한 긴축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안정화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신뢰가 있을 때는 훨씬 적은 고통과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는 당국에 대한 신뢰가 사람들의 ‘기대’라는 핵심 경제변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시정책 당국의 행태를 보면 새 정부의 경제팀은 이미 무리한 수출드라이브의 후폭풍으로 신뢰성에 크게 상처받은 상황이고, 한국은행은 이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팀 수장이 재신임되면서 거시경제 정책이 조만간 수출드라이브와 인플레이션 유발적 정책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암묵적 기대가 사라지지 않고 있고, 이는 안정화 정책을 고비용·저효율의 늪에 빠뜨려 놓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안정화 정책의 비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거시정책 당국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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