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8.07 20:13 수정 : 2008.08.07 22:56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시론

요즘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만개하는 듯했던 언론자유가 다시 침해당하는 참으로 의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영방송사 사장 퇴진 강요,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대한 검찰 수사, 인터넷 규제 강화 등 불과 1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민주선거로 들어선 정부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명백히 위헌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일방적인 반대가 아니라 찬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신문은 감사원의 공영방송 표적감사와 검찰의 <피디수첩> 수사를 언론탄압이라고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들고 있다. 언론자유를 가르치는 일부 학자들도 이들 국가기관의 부당성에는 침묵하면서 언론의 책임만을 강조하며 공영방송을 비판한다. 정부에 대한 명예훼손죄 적용은 극히 제한적이고 언론 공정성 문제에는 국가가 개입할 수 없으며 공영방송은 국가기관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자유국가의 상식이다. 자신의 힘을 무한정 키우려는 것은 국가의 일반적 속성이니 그렇다 치고 이에 동의하는 사회 구성원과 언론이 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20세기 초 나치즘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자유가 주는 부담’에서 찾고 있다. “지성적인 독일 민족이 어떻게 전체주의적 광기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봉건사회 해체 후 주어진 자유가 힘들어 명령과 복종을 바탕으로 한 가학-피학 관계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왕이나 교회가 어떠한 문제이든 하나의 해석을 내려 주었고 이에 따라 어떠한 사회적 문제도 쉽게 결정되었다. 그러나 자유와 함께 찾아온 백가쟁명이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오랜 독재 시대를 지나 민주화 도상에 들어선 이후 지난 20년간 많은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경험했다. 이것이 침묵 속의 경제발전에 익숙해 왔던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남미에서도 지난 60~70년대에 민중주의에 대한 반발로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정치와 경제 발전이 모두 역진하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복잡한 것이 싫고 새로운 것을 불편해하는 인간 심리는 일방적인 명령이나 전횡적 권력에 복종·동의해 버리고 마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종 심리의 이면에는 지배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안티’형 교육감선거 플래카드가 휘날린 강남지역에서는 이에 부응한 듯 몰표가 나왔다. 교사들이 이뤄낸 사학비리 감시와 인간교육의 성과에는 애써 눈감고, ‘나쁜 집단’으로 지목하여 때리고 싶은 것이 대표적인 자유로부터의 도피 심리인 것이다.

자유가 피곤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유보다는 전체주의의 대가가 훨씬 더 컸다. 우리는 지금도 전체주의 체제의 유산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사회비용으로 이 지긋지긋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언론 자유 침해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겠지만 이것이 남길 상처가 아무는 데는 정말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자유가 부담스러워 속박에 동의한다는 것은 새로움과 불편함을 수용해 나가는 과정, 즉 개인의 인격 성장 정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차원의 성장도 정체되어 경제 불안과 정치 불안이 지속적으로 악순환하는 남미형 저발전이 염려되기도 한다. 자유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