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4 21:09
수정 : 2008.08.14 21:09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시론
영광과 비애, 광복 63주년과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은 국민의 소회리라. 영광-분단과 열전·냉전을 겪으면서도 동북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세계 10위권의 경제발전과 첨단 정보통신(IT) 산업에 성공했다. 비애-세계 유일의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90 대 10의 빈부 격차와 갈등 구조의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지금 다시 제도적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은 산업화의 합목적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남북관계는 10년 전 냉전대결 구도로 되돌아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
1)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 아니다. 집권했으면 초당적 위치에서 인재를 발탁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조선 후기 영호남, 관서 관북, 서얼 상민 모두 내치고 몇 개 가문의 인물로 세도정치를 하다가 나라가 망했다. ‘고소영’ 인사정책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2) 지난 20년간 피땀 흘려 쟁취한 민주적 가치들이 무너지고 있다. 백골단 부활, 시대착오적 ‘불온 서적’, 국세청·검찰·감사원 등 공권력의 사권화, 방송 장악이 거침없이 진행된다. 민주 질서가 무너지면 변칙이 나타난다.
3) 여론의 다양성을 수렴하지 않고 조·중·동 보수 신문에 의존한다. 이들 신문의 정파성으로 국민 신뢰도가 10%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판언론을 적대시하고 친여 신문만을 여론으로 환치하면 떠난 민심은 돌아오지 않는다.
4) 향후 20년이면 중국의 국력이 미국과 비슷해지고 미·중 양극 시대가 된다는 것이 국제 석학들의 분석이다. 대중국 무역은 미국에 앞섰고 재중 유학생은 미국에 육박한다. 조선시대 인조가 광해군의 명·청 등거리 외교를 무시하고 명나라 사대외교로 회귀하다가 병자호란의 국치를 겪었다. 삼전도의 치욕에 절통한다면 일방 외교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5) 대통령 주변의 몰역사론자들이 문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통해 독립운동과 임시정부를 비하하고, ‘이승만 건국론’을 내세워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과제를 묵살하고, ‘박정희 산업화론’을 숭배하여 민주적 가치와 양극화의 해결을 외면한다면 ‘선진화’는 요원하다. 대통령은 역사 발전이 단선이 아닌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6) 측근들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지난 10년 외환위기 극복, 남북 화해 협력 진전, 정보화, 민주 제도 구축, 지역 갈등 완화, 여성 권익 신장 등 상당 수준의 국가 발전이 있었다. 새 정부가 이를 계승, 보완, 시정함으로써 국가의 영속성이 유지된다. 민주시대의 정권교체는 조선시대의 ‘반정(反正) 거사’가 아니다.
7) 촛불시위가 한풀 꺾이는 듯하면서 정부의 강경책이 쏟아진다. 시위자 폭력 진압, 공권력 남용, 국회·야당 무시, 공영방송 사장 해임·측근 낙하산 인사 등 무리수가 넘친다. “독재를 해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박정희 신화’의 시대는 지났다. 목표와 과정, 투입 기능과 산출 기능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2천년대 국민의 수준을 무시해선 안 된다.
8) 남북 화해, 통일 문제는 개인 취향이나 정책 차원이 아닌 국가·민족의 과제다. 헌법·대통령 취임선서에도 명시돼 있다. 대북 화해 협력을 친북·용공시하는 냉전 시각이 문제다.
프랑스 혁명 뒤 ‘변할수록 옛 모습을 닮아간다’는 말이 유행했다. 반동과 극단의 악순환을 두고 한 말이다. 우리가 그런 꼴이어선 비극이다. 광복 63주년, 정부수립 60주년-영광은 키워나가고 비애는 줄여나가는 것, 이 대통령의 원려와 국민의 각성이 요구되는 광복절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