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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4 18:47 수정 : 2014.08.04 18:47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7월28일 검찰의 구형과 피고인 최후진술을 끝으로, 내란음모사건은 이제 항소심 판결 선고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검찰은 제1심 재판 때처럼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을 구형하였다지요.

내란음모죄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반대파나 소수 정파를 제거하기 위해 남용되기 참 쉬운 죄목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내란음모죄가 적용되었던 1974년 민청학련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사건에서 검찰은 ‘민청학련’, ‘한민통’이라는 조직이 내란을 모의했다고 했었지요. 당시에는 유죄판결이 내려졌지만, 재심에서 모두 조작사건으로 밝혀졌고 무죄로 결론났습니다. 이 모진 역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내란음모죄의 남용으로 민주주의의 전제인 사상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지요.

이런 이유에서 내란음모죄의 처벌은 엄격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음모죄가 성립하려면 범죄를 실행하려는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 합의에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내란음모사건은 어떨까요.

첫째, 검찰은 5월12일 모임이 내란을 모의한 자리였다고 주장하지만, 그 모임에서 내란을 획책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내란죄는 단순히 폭력적인 파괴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 전복 등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하는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내란음모의 ‘합의’가 있다고 하려면 당시 모임의 참가자들이 언제 어떻게 폭동을 일으키고 국가기관을 어떻게 전복시킬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합의하는 경우라야 하겠지요. 법원이 증거로 인정한 녹취록에 의할 때, 5월12일 모임은 정세강연과 토론의 자리였을 뿐, 그 모임에서 폭동이나 국가기관 전복의 구체적인 행동을 ‘합의’한 사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토론한 것과 합의한 것은 분명히 차원이 다른 개념이지요.

둘째, ‘실질적 위험성’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실질적 위험성’이란 계획한 내란행위가 곧바로 실행에 옮겨질 절박한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려면 내란계획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에 의하더라도 이와 같은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하기엔 부족합니다.

검찰은 아르오(RO)라는 지하혁명조직이 있어서 위험하다고 주장합니다. 제1심 판결은 아르오가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조직 등 구체적인 실체를 밝히지는 못했지요. 그저 아르오라는 조직이 “있다”고 추론하면서 아르오가 내란을 모의했으니 위험하다고 한 제1심 판결은 그래서 법리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합의도, 실질적 위험성도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는데, 제1심 판결처럼 ‘아르오니까 위험하다’는 추론을 근거로 하여 내란음모죄로 처벌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파괴입니다. 특정한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한 집단이라고 낙인찍고 그 정치적 소수집단을 제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민주주의는 정치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관용을 필요로 합니다. 설사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주장일지라도 그러한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인정할 때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우리 사회에 생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사상 자체’를 내란음모죄로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저는 내란음모사건에서 민주주의를 변호합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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