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20 19:03
수정 : 2014.08.2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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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각 작가·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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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지난달 하순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느닷없이 사퇴했다. 그의 사퇴 소식은 대형 뉴스들의 홍수 속에서 거품처럼 잠시 일었다가 곧 사라졌다.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알펜시아 건설을 밀어붙였으며, 이후 조직위원장 시절에는 현실 가능한 여러 대안들을 간단없이 묵살하고 알파인경기장 후보지로 가리왕산을 강력하게 추진했었다.
“왜 꼭 가리왕산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요구하는 특별한 시설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늘 앞세웠다. 그것은 불가항력의 신탁이었다. 그런데 최근 최동호 스포츠평론가가 한 매체(기독교방송)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위원회 쪽은 김진선 전 위원장이 말한 ‘특별한 시설 기준’을 들이대며 중봉 공사를 강요한 적이 없고, 오히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것을 장려했다”고 한다. 또 위원회 쪽은 “김 전 위원장이 개발을 위해 자신들을 이용했다고 보고 불쾌를 드러냈다”고 한다. 지난 2월 동계올림픽 이후 소치가 유령도시로 변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위원회 쪽은 동계올림픽이 경제효과는 없으면서 환경파괴만 초래한다는 거센 논란에 곤혹스러워하던 터에 ‘한국의 조직위’가 하지 않은 말을 ‘사실’인 양 호도한 데 대해 불쾌를 표했다는 이야기다. 분노한 생태주의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송구하지만 이는 ‘사기를 쳤다’고 말해야 옳은 일이다.
이 나라의 숲들은 일제 수탈과 6·25로 인해 거의 모든 산림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지금도 막개발로 국토가 몸살을 앓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의 우거진 산림을 지니게 된 것은 독재정권마저도 지키려 했던 산림녹화 의지 때문이었다. 그런 범국민적 노력으로 시방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숲은 50~60년 수령의 ‘젊은 숲’이다. 그러나 가리왕산은 일제강점기와 한반도를 몰아친 전쟁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조선시대에는 가리왕산을 ‘보물산’이라 호칭하며 입산을 삼가는 것으로 보호했다. 우리 정부 또한 2008년 뒤늦게나마 가리왕산의 높은 생태적 가치를 인정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천년수림에 대한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숙망의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들뜬 문명과 가리왕산이라는 자연이 정면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때 주류 경제학자들이 단 한번도 그 가치를 환산해본 적이 없는 자연은 문명이라는 강자 앞에서 말할 수 없이 무력한 약자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대립에서 강자는 흥분과 열기 속에서 2012년 6월 ‘동계올림픽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듬해 6월에는 올림픽을 위해 보호구역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거짓 근거를 앞세워 ‘있던 괜찮은 법’을 ‘새로운 악법’으로 깔아뭉갠 경우다.
그가 사퇴하기 전이었던 6월19일 조직위는 “숲의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의 설계보다 30%가량 슬로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조직위가 그토록 숲을 사랑한다면 그동안 완강하게 묵살해왔던 대안들, 즉 무주 재활용설이나 영월군 만항재 슬로프화설이나 적설량이 많은 상원산, 그리고 북녘도 공동 유치를 희망하는 마식령스키장 활용설들을 재검토하는 일이 앞서야 할 것이다. 이 발표는 가리왕산이 아니면 안 되는, “니네들은 모르는 속사정”이 있다는 꼼수로밖에 안 읽힌다. 천년산림을 지키면서도 올림픽을 잘 치를 현실성 있는 대안들이 있건만, 약삭빠른 투기꾼들과 토건업자들은 한탕 돈벌이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부터 가리왕산 공사는 시작되었지만 훼손 지역에 대한 사후 복원계획은 미승인 상태로 설왕설래 중이다. 안 늦었다. 우리 모두 가리왕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손대면 복원 불가능할 천년수림을 우리 당대에 잃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성각 작가·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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