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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5 18:58 수정 : 2014.08.25 19:02

박인준 한서대 토목공학과 교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적어도 열 길 물속은 알았다는 얘기가 된다. 한 길은 어른의 키높이이니, 열 길이라면 15~20m 정도나 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땅속 한 길도 모르고 살고 있다. 최근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싱크홀 때문에 이를 절감한다.

서울 송파구에서 6월 이후 생긴 싱크홀로 인해 온 국민이 땅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싱크홀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속시원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싱크홀은 한 길 사람 속과 같은 절대 미지의 영역인가? 그렇지 않다. 싱크홀은 상당부분 원인이 밝혀진 현상이고 사전에 충분히 대책을 세울 수 있다.

해외 토픽 사진에 등장하는 거대한 싱크홀은 대부분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토양의 산성화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표수가 산성화되고, 그 지표수가 지하로 흘러들어가 석회암반을 녹이게 되고 땅속에 점차 거대한 동공이 생긴다. 동공이 점점 커져 위에 있는 흙의 압력을 지탱하지 못해 깔때기 또는 원통 모양의 웅덩이를 지표면에 만드는 것이 싱크홀이다. 요컨대 다습한 석회암 지대에서는 싱크홀이 발생하기 쉽다.

국내 싱크홀은 외국의 사례와는 달리 인위적인 동공 발생으로 인한 지반 침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원인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지하에 매설된 관(상수·하수·전력·통신·가스·송유관)들의 노후화다. 이를테면 상수관의 경우 내부 수압이 높아 관이 낡으면 상수돗물이 관 밖으로 강하게 새어 나와 관 주변에 엄청난 물길을 만든다. 이 물길이 도로 밑에 생긴다면 도로 침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연약한 지반에 대규모 건축물의 기초 터파기 공사를 진행할 때 지하수를 무분별하게 뽑아내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지하수와 함께 사질토(모래흙)도 함께 쓸려나가 동공이 발생한다. 현재 서울 잠실의 싱크홀이 제2롯데월드 공사와 관련이 있는지 전문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셋째는 지하수 아래쪽에 터널 공사를 하는데 공사 잘못으로 지하수층과 터널 사이의 자갈이나 모래흙이 쓸려나갈 수도 있다. 이번 서울지하철 터널공사 중 발생한 싱크홀은 이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지하터널 내의 방수가 부실해 우기에 지하수와 지표흙이 터널 내부로 다량 유입되면서 지표면이 내려앉을 수도 있다. 국내 도심지의 경우는 이런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고 있다.

싱크홀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은 현재로선 찾기 어렵다. 이는 싱크홀의 원인이 되는 시설물과 지하수의 변화에 대한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공사 때 조사했던 지반조사 보고서 등의 자료가 제대로 보관돼 있지 않다. 이 보고서엔 흙의 종류, 지하수의 위치, 흙의 단단한 정도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보고서가 남아 있어도 통합적으로 관리해 ‘지반지도’로 만들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책임있는 국가기관이나 연구원에서 지반조사 보고서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관리하는 것이 대책 마련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런 자료를 통해 지반지도를 만들면, 모든 국민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의 속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만 더 지적하고자 한다. 개인 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 지반조사를 ‘규제’라고 생각해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의무 시행을 하지 않는 통에 그 건축물이 기울어져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땅속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 싱크홀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인준 한서대 토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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