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29 19:11
수정 : 2014.09.2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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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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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6월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저는 보았습니다. 많은 실종자 가족들이 유가족이 되어 떠났지만 남은 가족들은 떠난 가족들의 이부자리를 체육관에 그대로 뒀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자신들이 남겨졌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어쩌면 홀로 남을 마지막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이부자리조차도 아쉬웠습니다. 이부자리가 사람의 자리이자 사람의 흔적이자 사람의 기억이었던 것입니다.
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실종자 수색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석달이 지난 지금 실종자는 11명에서 10명으로 단 한명만 줄었습니다. 불귀와 망각에 맞서는 실종자 가족들의 노력은 여전하지만 체육관의 상황은 변했습니다. 빈 이부자리들은 치워졌습니다. 최근 일부 진도 군민들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체육관에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실종자 가족들의 노력을 더 위태롭게, 더 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는 그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 되었습니다. ‘기다림의 버스’는 지난 6월부터 시민들을 태우고 매주 금요일 서울을 출발하여 팽목항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저와 일행을 음식과 담소로 환대해 줬습니다. 그러나 경계의 시선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환대와 경계심이 아니라, 오로지 ‘잊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호소의 표정만이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에 남게 됐습니다.
‘기다림의 버스’는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 저는 동행한 시민들과 함께 팽목항 앞바다를 향해 실종자들의 이름을 외쳤고 돌아와 달라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날의 바다는 파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고 구조현장은 너무나 멀어 보이지조차 않았습니다.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인지도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항구의 어슴푸레한 불빛에 등을 돌리고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우리들조차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있었습니다. 오로지 희미한 촛불과 외침과 기도와 대화만이 그 어둠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를 가까스로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줬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팽목항의 경험을 잊지 못합니다. 그날 팽목항의 어둠이 아직도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습니다. 구조현장이 먼바다의 어둠 속에 잠긴 것처럼 세월호 참사 또한 과거라는 어둠 속으로 꺼져가고 있습니다. 그 선명했던 비극의 빛깔이, 대통령조차 눈물을 흘리며 인정했던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어느새 민생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어둠을 응시하는 짓을 그만두라 이야기합니다. 어둠 속에서 진실을 캐내고 어둠의 위협을 제거하려는 싸움이 불순한 선동이라 말합니다. 어둠에서 등을 돌려 우리에게 거짓 안전을 약속했던 현실로 돌아오라 어르는 목소리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어둠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 어둠 속에 돌아오지 못한 우리의 이웃과 아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라진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그들의 귀환을 소망하면서 어둠에 맞서 서 있어야 합니다. 10월3일 기다림의 버스가 팽목항의 어둠을 향해 출발합니다. 많은 이들이 버스에 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어둠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수록 어둠은 새벽빛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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