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30 18:38
수정 : 2014.09.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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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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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공적연금은 천덕꾸러기가 됐고,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이 대안이 되었다. 퇴직연금이 보완해줄 거라면서 국민연금의 급여율을 대폭 삭감해버리더니, 이제는 공무원연금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공무원에게 민간근로자처럼 퇴직연금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공무원 퇴직연금이 도입되면 정부는 민간의 고용주처럼 인건비의 8.3%(1년에 한달치 봉급)인 연간 4조5000억원의 보험료를 민간 금융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현재 말썽이 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국고보전액 2조5000억원보다 훨씬 큰 규모다. 이 돈을 공무원연금에 투입해 재정 안정화에 기여하게 하면 안 될까? 마찬가지로, 민간의 고용주들이 전액 부담하고 있는 퇴직연금 보험료를 국민연금에 넣고 더 높은 연금을 주면 안 될까?
연금액이 얼마 되지도 않고 기금도 고갈이 된다 하니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노후 불안에 떨고 있다. 곧 공무원들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것이다. 퇴직연금이 노후 불안을 해소해줄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사적연금은 공적연금보다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투자손실의 위험을 가입자가 안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플레이션에 연동도 안 되며, 연금을 죽을 때까지 받지도 못한다. 이름만 연금일 뿐, 현재 퇴직연금의 90%가 일시금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투자수익이라도 잘 내는가? 그렇지도 못하다. 2013년 퇴직연금의 평균수익률은 은행 이자 수준인 2.3%였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항변하겠지만, 보수적 운용을 하는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이 4.2%였던 것을 고려하면 결코 변명거리가 못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재 87조원의 적립금을 관리하는 51개 민간퇴직연금사업자들은 꼬박꼬박 수수료를 챙겨간다. 자격관리 등 운용관리수수료로 ‘보험료’가 아닌 ‘적립금’의 0.3~0.7%, 그리고 투자 관련 자산관리수수료로 적립금의 0.2~0.7%를 떼어간다. 매년 ‘적립금’의 0.5~1.4%가 사라지는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투자수익에서 수수료 떼고 나면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에 국민연금은 관리운영비가 적립금 대비 0.1%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의 수수료율이 국민연금보다 최대 14배가 비싼 것이다. 연금회사가 가져가는 게 많으면 가입자의 연금급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거품이 꺼진 저금리 시대에 이는 치명적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지난 8월27일 사적연금 활성화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퇴직연금을 아예 의무화하고 조세감면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퇴직연금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중소기업에는 보험료뿐만 아니라 수수료에도 국고보조를 주겠다고 한다. 국민여론에 막혀 민간의료보험을 키우지 못하니, 대신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를 통해 금융산업을 키우겠다는 복안인가? 안타깝다. 한국의 제조업은 물론, 대중음악과 영화산업까지 세계시장에서 돈을 벌어 오는데, 우리나라 최고 연봉의 인재들이 모인 금융산업은 국내시장에서 정부가 차려주는 밥상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9%에 퇴직연금 보험료율 8.3%를 합하면 17.3%에 달한다. 유럽 복지국가들의 평균 연금 보험료율 20%에 필적한다. 스웨덴처럼 공적연금의 기여와 급여의 불균형 구조를 개혁한 후 17.3%의 보험료를 공적연금에 투입하면 기금 고갈 걱정 없이 안정된 노후소득보장이 가능해진다. 정부와 여당은 사적연금을 키우려는 확고한 의지와 재원을 공적연금의 개혁과 내실화에 쓰길 바란다. 사적연금은 튼실한 공적연금의 기반 위에 부가적으로 발전해야지, 공적연금의 대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간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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