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02 18:37
수정 : 2014.10.02 18:37
|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
국민건강보험은 한국의 사회복지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제도이지만, 보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2.2%에 훨씬 못 미치는 55.3%로 높지 않다. 이렇게 낮은 의료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및 재원 확충이 절실하다. 그런데 정부는 지속적으로 의료영리화를 추진하고 있고, 최근엔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개선하려고 한다. 보험료 부과는 가입자들의 보험료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부과 대상이 확대된다면 건강보험 수입이 증대되어 의료보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보험료 부과에서 중요한 것은 소득 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다. 만약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노동자가 고자산가보다 더 많은 비율의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면 건강보험제도의 정당성은 위축될 것이다. 그러므로 총자산(재산 및 소득)에 따른 보험료 부담은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의 정신을 실현하는 기본이자 원리가 된다.
정부가 예고한 건강보험에 대한 ‘소득중심 부과체계’는 표면적으로 현재보다 더 공정한 부과기준을 마련할 것 같은 프레임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시됐던 몇가지 기준을 보면 과연 더 공정한 부과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 부과기준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누어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이것은 소득만으로 보험료 부과가 가능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구분한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파악이 어렵고, 자신의 소득보다 하향 신고하는 경향 등으로 소득뿐만 아닌 재산, 자동차, 가족 수 등을 보험료 산정에 반영해 왔다. 이로 인해 직장가입자의 재산에 대한 보험료 미적용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또한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부과됐던 보험료율은 매우 역진적이다. 예를 들면 지역가입자의 재산액이 1억5000만원 이하인 경우 1~1.14%인 반면, 3억 0.69%, 5억 0.53%, 10억 0.32% 이런 식으로 재산이 많을수록 보험료율은 축소되어 1000억인 경우 0.01%만 부과한다. 그런데 공단과 정부는 전월세에 대한 보험료 부과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대한 보험료 기준을 매우 불공정한 것으로 평가했다. 소득 증대와 관련 없는 전월세와 같은 ‘비증식 재산’에 대한 부과기준은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사례를 내세워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에 대한 부과기준이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그 혜택은 부자에게만 돌아가게 된다. 더욱이 근로소득, 사업소득, 초과금융소득, 연금소득 등과 같은 소득 부과 기준은 확대하겠다면서, 상속 및 증여소득에 대해서는 재산적 속성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것은 불로소득을 재분배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과 같다. 반면 모든 저소득층에게 가구 소득과 상관없는 정액의 최저보험료 도입을 제안했다. 이 두가지를 대비해서 보면,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보험료 책임에서 제외되고, 저소득층은 현재 보험료보다 많은 정액의 보험료를 책임지게 되는 역진성이 발생한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혁의 원칙은 더 강한 소득 재분배와 재정확충 기반 마련에 맞춰져야 한다.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왜곡된 대립구조가 아니라, 자본과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부과기준이 필요하다. 총자산이 기준이 된다면 직장가입자의 재산 및 피부양자 문제도 합리화될 수 있다. 소득 재분배 기능 제고와 재정확충을 위해서는 부동산과 같은 불로소득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 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재고되지 않는다면 부과체계 개편 역시 서민증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