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17 18:43
수정 : 2014.11.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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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문화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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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시험을 잘 치른 수험생은 해방감이 크겠지만, 예상보다 시험을 못 본 수험생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이나 학과를 지원하게 되면 ‘합격을 해도 실패자’인 것 같은 찜찜한 마음에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기기도 어렵다. 매년 되풀이되는 수능 문제 출제오류 논란에서 보듯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는 교과서보다 더 넓고 역동적이며, 현실의 문제는 수능 문항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원으로 각종 국가수준 평가업무를 담당하며 고충이 많았고 특히 경직된 선다형 문항 평가의 한계를 절감했다. 창조적 인재들 중에는 학교 교육을 벗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국졸이었고 문화대통령 서태지 역시 공고 중퇴생이었다. 창조경제의 중심지로 주목받는 영국도 예외가 아닌데, 비틀스 멤버들,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비비언 웨스트우드, 버진그룹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 등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이들의 삶이 너무나 특별하여 자신과 동떨어진 사례로 느껴진다면,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우리에게는 가난한 미혼모 시절만 알려져 있지만, 원래 롤링은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곱게 자란 모범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여학생 대표를 할 정도로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롤링은 옥스퍼드대에 지원했지만 영국판 수능에 해당하는 에이레벨 시험을 못 봐 어쩔 수 없이 한 단계 낮은 대학의 마음에 들지 않는 학과에 진학한다. 대학 시절 전공과는 관련 없는 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던 롤링은 졸업 이후 취업도 연애도 잘 안 되는 암울한 청춘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롤링이 명문대에 떨어지고 방황한 것이 결국은 모두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롤링이 해리 포터의 등장인물을 닮은 괴짜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지리적 상상력을 길렀기에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던 전세계 어린이들이 다시 책을 읽는 놀라운 마법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만일 그녀가 차가운 엘리트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점과 스펙을 쌓는 데 열중하고 보수적인 어머니의 바람대로 법률회사 비서로 취직했다면, 영국을 대표하는 히트 상품, ‘해리 포터’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흥미롭게도 옥스퍼드대를 정식으로 다닌 일이 없는 롤링은 이 대학 재정에도 크게 기여한다. 옥스퍼드의 한 칼리지가 해리 포터 영화에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식당으로 등장하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졸업식에서 명연설까지 했으니, 롤링은 이제 명문대학에 대한 한은 다 풀었을 듯하다.
부끄럽지만 마지막으로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여년 전 고3 수험생이었던 나는 평소보다 시험을 잘 보지 못했고, 원래 가고자 했던 과에 떨어져 할 수 없이 2지망으로 지리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내내 ‘내 원래 실력보다 낮은 학과에 다니고 있다’는 열등감에 시달렸고 지리학 공부에 열중하기보다는 밖으로만 나돌았다. 하지만 실수로 가게 된 학과가 나에게 딱 맞는 전공임을 뒤늦게 깨달았고, 지금은 지리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수능을 망친 그대의 앞길에 펼쳐지는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마치 해리 포터의 마법처럼!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문화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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