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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30 19:18 수정 : 2015.03.30 19:18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 처음엔 핵보유국임을 자처해온 북한에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꾸짖기 위해 꺼낸 서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3월24일 한국해양대에서 열린 ‘청춘 콘서트’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내 말이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한 말이다.

김 대표의 이 발언은 앞으로 일파만파를 불러올 것이다. 우선 북한은 자국이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는 데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김 대표 발언 나흘 후인 28일 북한은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에서 북핵을 포기시키려는 회담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치고 나왔다. ‘북핵불용’ 원칙을 북한이 ‘불용’하겠다는 말이다. 이게 오비이락일 뿐일까? 앞으로 북한은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해나갈 것이다.

북한은 2차 핵실험 3개월 전인 2009년 2월부터 핵보유국임을 자처했다. 2012년 4월에는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했다. 그러면서 이젠 6자회담이 아니라 핵보유국끼리 핵군축회담을 하자는 주장까지 했다. 북한의 이런 주장에 그동안 한국은 물론 미, 일, 중, 러 모두 ‘북핵불용’ 원칙에 입각해서 핵개발도, 핵보유국 자처도 용납하지 않았다. 임기 중 두 번의 북핵 실험을 허용한 이명박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도 미국, 중국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북핵불용’ 원칙을 재확인해 왔었다.

그런데 집권 여당 대표가 ‘북핵불용’ 원칙에 반하는 ‘북핵인정’론을 터뜨렸다. 앞으로 관련국들, 특히 미국과 중국에 무슨 논리로 해명을 하고 원상회복할 것인가? 발언이 문제가 되니까 김 대표는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고 했을 뿐 인정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 ‘봐야 한다’와 ‘인정한다’의 차이는 무엇인지 김 대표에게 묻고 싶다. 이 문제가 국내에선 정치바람을 타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국제적으로 그렇게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 김 대표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북한이 핵보유국이 됐다고 말하면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보수 결집이 일어나서 4월 보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북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 사드 배치 불가피론이 탄력을 받고, 사드 배치를 주장하는 자기 계파가 당내 권력싸움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발언 동기가 무엇이었건 간에 1993년 북핵 문제가 발생한 김영삼 정부 이래 역대 정부의 북핵정책의 대전제였던 ‘북핵불용’ 원칙은 일단 중상을 입은 셈이다.

취임 후 지난 2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의 진전을 사실상의 대북정책 전제조건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런데 같은 당 대표가 북핵 보유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동안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핵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난처하게 되었다.

북핵 문제는 고도로 복잡한 국제 문제다. 남북회담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북핵불용’ 원칙하에 6자회담까지 했다. 이렇게 복잡한 국제정치 문제가 일시적인 국내정치 수단으로 활용되는 걸 보면서, 구한말 정치상황이 떠올랐다. 구한말 조정 대신들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외세를 등에 업었다. 친청파, 친일파, 친로파로 갈려 세력다툼을 하는 와중에 고종이 러시아공관에 1년이나 피신했던 일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외국 공사들이 구한말 국내정치를 좌지우지하다 최종적으로 친일파가 승리했다. 일제식민통치 36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원광대 초빙교수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쓴 건 자살행위였다. 물론 구한말과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그러나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쓴 이번 일로 인해, 앞으로 현 정부는 물론 후임 정부까지도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입지가 좁아질 것만은 분명하다.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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