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04 20:38
수정 : 2016.04.04 21:50
2005년 8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경북 경주시로 결정되면서 경주는 3000억원의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받았지만, 대부분 시민들의 편익을 위해 사용되고 말았다. 방사성 물질과 관련한 환경오염은 해당 지역에서 살아갈 미래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텐데, 이를 대비한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었다.
이처럼 미래세대란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미성년자여서 현세대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는 없으나, 현세대의 정책에 영향은 받는 세대’를 말한다. 그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이전 세대가 물려주는 사회경제적, 물리적, 문화적 유산을 무조건 감내해야만 하는 다음 세대다. 지금의 제반 국가적 조건은 현세대가 미래세대로부터 잠시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기에, 지역 개발을 겨냥한 기성세대의 결정은 미래세대를 포함해 장기적인 비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발전 이슈들이 산재한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연 후보들은 미래세대를 위한 비전과 공약을 얼마나 제시했을까? 카이스트 미래세대행복위원회(위원장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가 공약을 분석해보니, 23개 정당 중에서 12개 정당은 아예 미래세대를 위한 공약이 없었다. 나머지 11개 정당마저도 과도한 입시교육, 청년실업 등 현세대의 구미에 맞는 미래세대 이슈들이 대부분이었다.
방폐장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대규모 스포츠시설 개관, 산업단지 조성, 4대강 복원 등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 주민들의 행복을 고려해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 현세대의 이익에만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지속가능한 행복은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모두 누려야 할 가치임에도 말이다.
북유럽에서는 일찌감치 ‘미래세대’란 개념을 제안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준비해왔다. 세계 7위의 원유 수출국인 노르웨이는 현세대가 석유 자원을 사용하여 벌어들인 수익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국부펀드를 조성하였다. 석유 고갈 후에도 후손들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석유기업들로부터 받은 세금을 기반으로 하여 현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한 것이다. 스웨덴도 핵연료 처분장 보상액 3000억원을 미래세대를 위한 기금으로 조성해 현세대가 이를 탕진해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국가의 장기적인 미래 비전과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미래세대의 권익과 행복을 보장하고자 지난해 미래세대행복위원회를 발족했다.
미래세대행복위원회가 이번 총선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미래세대 희망노트’(www.futurepolicy.net/)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모든 지역구 및 비례대표 후보자들에게 미래세대를 위하여 과연 어떤 구체적인 비전과 공약을 제시하는지 직접 묻고, 이를 실천하는지도 끝까지 모니터링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총 943명의 총선 지역구 후보들과 비례대표 후보들에게 미래세대 희망노트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미래세대를 위한 공약을 명시하도록 요청하고, 시민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이트를 3월31일부터 4월13일까지 총 14일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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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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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에 국회의원들과 유권자들이 미래세대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그들을 의사결정의 중요한 주체와 이해당사자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한다. 현세대가 미래세대의 자원을 당겨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성숙한 세대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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