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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7 18:23 수정 : 2016.10.17 19:01

조의연
동국대학교 교수

성과연봉제의 성과지표 설계는 자본과 성장의 논리에 지배받는다. 적자를 보는 공기업은 적자를 줄이기 위하여, 흑자를 보고 있는 공기업은 더 많은 흑자를 내기 위하여 돈이 되는 것을 중심으로 성과지표가 운용된다. ‘시민의 안전’과 같은 공공성을 가진 영역은 돈이 되지도 않고 거꾸로 돈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주요 성과지표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공익을 저해하고 결국 공공성의 약화를 유발한다.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하고 실행해야 하는 대학에서 교육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바로 경영자 중심의 성과지표로 성과연봉제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경영을 책임지는 총장이나 이사회는 대학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성과와 효율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바로 성과와 효율을 극대화하는 성과연봉제가 경영진의 목적을 성취하는 최적의 방편이다. 대학 경영진은 교수들을 줄 세우는 상대평가의 연봉구조를 기반으로 다른 성과지표보다 연구업적 성과지표에 높은 가중치나 높은 배점을 부여하기만 하면 채찍질 없이도 교수들 연구업적의 양적 증대를 극대화할 수 있다. 현재, 대학의 총장이나 이사회는 외부 대학평가기관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외부 평가기관의 연구업적 평가 비중을 대학에 그대로 옮겨올 수밖에 없다. 외부 평가기관에 목매는 총장들은 따라서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성과평가지표 설계 과정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수들의 역할은 교육과 연구의 균형 잡힌 수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업적 중심으로 치중되어 있다. 또한 교육업적은 정량화·객관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핵심지표에서 배제된다. 이는 피평가자로서 교수들이 연구업적에만 치중할 뿐 인재 양성에 노력을 기울일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성과연봉제가 시행된 지 4년째로 접어든 필자의 대학에서도 이 광경은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 연구업적의 양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경영진은 교수들에게 연구업적 성과점수를 무한대로 열어놓았다. 다른 성과지표에서 낮은 성과를 낸 교수라도 연구논문만 많이 쓰면 성과평가에서 상위 그룹에 속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성과연봉제는 “돈이 되는 것은 연구이고 교육은 돈이 안 된다”는 천민자본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평가구조에 교수들의 삶을 묶어놓는다.

정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는 창의적 인재 양성에 달려 있다고 ‘창의’와 ‘창조’를 외치면서도 현재의 성과연봉제에서는 이에 걸맞은 질 높은 교육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성과연봉제에 기반한 연구업적의 양적 생산이 대학과 학문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과도한 맹신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인재 양성의 핵심인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 정부가 이러한 성과연봉제의 폐해를 안다면 공공성을 가진 공기업에 성과연봉제를 무조건 밀어붙일 수 있을까? 정부가 저성과자의 퇴출을 목적으로 또는 오로지 경영자의 입장에서 관료적으로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성과연봉제를 강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학의 성과연봉제 사례만을 보더라도, 정부가 공기관을 대상으로 추진하려는 경영자 중심의 성과연봉제는 그 기관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정체성을 잃게 할 것이 예견된다. 성과연봉제가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이 제도를 거쳐서 지나갈 수밖에 없다면, 경영자들은 노동조합과의 공적 의사소통을 반드시 거쳐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성과지표 설계 과정에 노조의 참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대학 성과연봉제의 폐해 사례가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논의 과정에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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