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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8 18:24 수정 : 2016.11.28 19:27

박순성
동국대 교수

시민들의 거대한 함성이 마침내 권력집단과 정치사회에 변화를 가져왔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에 시달리던 검찰은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의 헌정 파괴와 법률 위반 앞에서 정치적 민첩성을 발휘하였다. 3당 합당에 뿌리를 둔 보수정당은 이전의 위기에 비교될 수 없는 심각한 내부 분열을 맞고 있다. 야 3당과 야권 정치지도자들은 탄핵 소추를 통해서라도 헌정 회복을 하겠다는 공통의 목표를 세우고 신속하게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이 초겨울의 궂은 날씨에도 거리로 나온 절박한 촛불 민심을 제대로 정치에 반영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기 힘들다. 검찰 안팎에서 제도개혁이 이루어지고 자정 능력을 강화하는 문화가 형성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억압적 분단체제의 낡은 정치 신조를 붙들고 있는 보수정당은 여전히 위기 대응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현재의 헌정 위기가 검찰과 보수정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진정한 계기가 되려면, 당연히 정치사회 전체의 혁신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국민은 야 3당과 야권 정치지도자들을 바라본다. 물론 국민은 자신들의 간절한 바람이 새로운 정치세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기존 야권의 자기혁신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있다. 아마도 국민들의 기대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야권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의외로 담담하다.

이제 야 3당은 자진 사퇴라는 국민의 명령을 거부한 대통령에 대해 추호의 빈틈도 없는 탄핵소추안을 마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권위는 탄핵 확정을 통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법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탄핵에 정당성이 주어질 수 있도록, 야권은 특별검사와 국정조사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의 참여를, 검찰의 협조를 최대한 끌어내어야 한다. 이는 보수정당과 검찰의 변화를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자, 탄핵을 국민의 승리로 만드는 길이다.

탄핵은 임시의 극약처방일 뿐이다. 민주주의, 민생, 평화의 위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탄핵 직후부터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한국 사회는 헌정 체제 정비와 위기 극복의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에 빠져들 위험을 안고 있다. 개헌 문제와 집권 방안을 놓고 야권 내에서조차 이미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되돌아보면, 다섯 번의 퇴진 촛불집회가 일어나는 동안 정치사회가 내놓은 정치적 성과는 실제로 거의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국회는 실질적인 국정 공백 사태를 끝낼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대안 마련은 오직 정치적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협력정치, 야권 내부의 그리고 야권을 넘어서는 협력정치가 필요하다. 탄핵된 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선출 권력인 국회는 국민들 앞에서 정치적 책임을 걸머지는 역량을 보여야만 한다. 국회가 정쟁의 장이 아니라 정쟁을 뛰어넘는 협력의 장으로 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대통령의 헌정 파괴가 야기한 민주공화국의 위기는 결국에는 개헌과 헌정 체제 정비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탄핵 확정 직후에 현행 헌법을 통한 대통령 선출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대선 과정에서 그리고 대선 이후에 개헌은 가장 핵심적인 정치의제가 될 것이다. 모든 정치세력은 개헌 자체에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걸맞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헌법을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절대적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개헌 과정이, 단기간에 끝날 수는 없다. 대선 과정에서 개헌과 정권의 임기 단축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를 이룬 다음에, 개헌을 충실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탄핵 직후부터 개헌을 통한 새로운 헌정 체제의 수립까지 우리는 두 번의 과도정부를 살아가야만 한다. 탄핵 의결 이후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이후부터 대선까지 이르는 짧은 과도정부, 그리고 한번은 대선 이후부터 개헌에까지 이르는 좀더 긴 과도정부를 살아가야만 한다. 과도정부가 과도적이지만 불안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위기 극복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협력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어떤 개헌안이 옳은지, 또 어떤 개헌 과정이 최선인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지만, 어떤 정치세력도 협력정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협력정치를 위해, ‘떡을 자른 자가 먼저 떡을 갖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의를 지키는 태도를 정치세력들이 보여야 한다.

시민들이 거대한 촛불 행진 속에서 하나의 구호를 외치면서도 결코 소외되거나 외롭지 않은 까닭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자신들의 깃발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희생자의 가족과 동지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일터에서나 일터 바깥에서나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 배제되고 억압받는 사람들, 미래가 막혀 있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 꿈이 깨어진 모든 시민들은 자신의 분노와 바람을 거리에서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정치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그들의 깃발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듣고 읽어야 한다. 촛불집회는, 아직까지는, 시민들의 축제이다. 다양한 목소리와 수많은 깃발의 축제이다. 민주공화국의 붕괴라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절박한 축제가 이어지고 있을 때, 정치사회는 축제 이후를 걱정해야만 한다. 축제 이후에 본격적으로 드러날 대한민국의 위기를 정치사회가 앞장서서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치세력이 촛불 시민들의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배워야 한다. 정치사회 전체가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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