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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5 18:10 수정 : 2016.12.05 21:34

송호창
존스홉킨스대학교 USKI 방문교수, 변호사

미국은 시스템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다. 미국인의 안전과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 헌법 정신을 지켜주는 것은 몇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시스템과 제도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의 막말 소동에도 불구하고 힐러리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고 과거 이메일 사건을 재수사하겠다는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말 한마디에 지지율이 급속도로 무너진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막말은 개인적인 소양의 문제일 뿐이지만 힐러리의 이메일 사건은 국가운영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보는 시각이다.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연방수사국장의 발표가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힐러리의 패배를 예상하게 된 이유이다. 문제는 ‘시스템을 중히 여긴다’는 것의 의미다. 허점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2년이 넘도록 미국이 가장 열심히 한 일은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였다.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해야 할 일을 수행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반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위반자들을 징계하고 처벌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이고 그 핵심은 엄격한 처벌과 포상이다.

시스템을 지킨다는 의미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정해진 룰에 따라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높은 시민의식을 만드는 것이다.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 선장, 항해사와 기관사 등 모든 구성원이 각자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때 상호신뢰가 생기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비로소 가장 신속하고 안전한 대처를 할 수 있다. 세월호가 그 반대증거다.

미국 언론은 법 원칙을 위반한 대통령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할지 아니면 또다시 온정주의라는 ‘한국병’으로 대충 흐지부지될지를 주목하고 있다. 11월16일 <워싱턴 포스트>는 ‘부패라는 한국병은 치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박근혜 스캔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큰 제목을 뽑았다. 한마디로 ‘한국은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이란 말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온정주의라고 지적한다. 엄격하게 처벌하여야 할 때 ‘너무 심한 것 아니야’ 하며 화합을 떠올리고 적당하게 ‘통합’으로 마무리하자는 의식이다. 틀림없이 누군가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에게 그랬던 것처럼 선진국의 예를 따라 탄핵 이전에 스스로 하야하면 대통령을 사면하자는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대충주의, 온정주의가 법치주의의 뿌리를 썩게 만든다. 사실 우리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도 ‘이번만은 법치주의와 시스템을 바로 세우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에 등장한 ‘포승줄에 묶인 박근혜’는 가장 명징한 국민의 의지다. 박근혜 스캔들의 결말 중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통령이 예우를 받으며 기괴한 웃음만 남기고 조용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3차 담화가 그 뱃속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핵심 내용은 “사건 경위는 (내가) 조만간 밝히겠다”이다. 특검은 물론 검찰의 수사와 처벌을 못 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란 수습을 핑계로 원칙을 뒷방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위법에 대한 엄격한 수사와 탄핵,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혼란은 절대로 수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법 원칙을 위반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는 만큼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수사, 처벌하고 탄핵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원칙과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일은 사람에 대한 잘잘못을 철저하게 가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야 정치권이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내년 대선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경로를 찾기 위해 정치공학적 계산만 하다가는 지금 대통령과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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