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교수 지난 1월23일 유력한 대선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복지제도는 (난파된) 타이타닉호에서 구명보트에 타는 순서대로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선별주의적 복지관을 명백하게 밝혔다. 사회복지가 받는 사람의 권리가 아니라 주는 사람의 선의라고 해석하는 선별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복지급여를 받는 수급자들이 난파선의 승객으로 보일 것이다. 이들은 복지 수급자를 구명보트를 던져줘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무기력한 사람들로 낙인찍고, 따라서 국가는 선의로 이들을 구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인식구조에서 수급자는 공화국 시민으로서 권리를 갖지 못한, 단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사회의 열패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선별주의 복지가 타고 있던 배가 난파(시장의 실패)한 다음에 구조하겠다는 사후적인 복지라면, 보편주의 복지는 우선 배가 난파하지 않도록 튼튼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고 설사 난파하더라도 공화국의 시민답게 스스로 당당히 헤엄칠 수 있도록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모두는 그런 민주공화국을 지향한다. 이런 사실은 여러 지표로도 입증된다. 보편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재정건전성·고용률 등 모든 경제지표에서 매우 양호하고 빈곤율과 불평등 정도가 가장 낮은 반면에, 전형적인 선별적 복지국가인 일본과 미국은 경제지표가 매우 안 좋으며 특히 빈곤율과 불평등 정도가 가장 심한 편이다. 그 이유는 비교적 명백하다. 빈곤층을 선별하여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일본과 미국 같은 선별주의 사회는 부담자(납세자)와 수혜자(가난한 복지수급자)가 분리되기 때문에 빈곤 및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정책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중산층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세금을 내는 국가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과감한 사회정책을 펼칠 수 없다. 반면에 보편적 서비스 급여가 증가하게 되면 중산층은 공공서비스를 통해서 자신의 생활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복지국가를 지지하게 된다. 이를 학계에서는 ‘재분배의 역설’이라고 부르는데 스웨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웨덴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젊은 사람들이 기회의 땅 미국으로 취업을 많이 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아이를 낳고 키울 때가 되면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미국에서 연봉은 더 많이 받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다 보면 스웨덴처럼 튼튼하고 안전하며 건강한 사회적 인프라(보육, 교육, 의료 등)를 갖춘 나라에서 사는 것이 훨씬 삶의 질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국가비상사태는 1987년 체제의 한계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경제적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합법의 탈을 쓴 강자의 독주와 독선을 막지 못하여 결국 전체주의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현재 우리 사회처럼 극심한 소득불평등으로 내수기반마저 침식당하고 게다가 나아질 기미조차 없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길을 잃고 실종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집 나간 민주주의를 귀가시키기 위하여 추운 날에도 촛불을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올해 2017년은 1987년 체제의 구각을 벗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튼튼한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하여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우리 모두 한 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연대의식을 강화하여야 한다. 새로 개막되는 2017년 체제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답이다.
칼럼 |
[시론] 복지수급자는 타이타닉 승객이 아니다 / 문진영 |
서강대학교 교수 지난 1월23일 유력한 대선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복지제도는 (난파된) 타이타닉호에서 구명보트에 타는 순서대로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선별주의적 복지관을 명백하게 밝혔다. 사회복지가 받는 사람의 권리가 아니라 주는 사람의 선의라고 해석하는 선별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복지급여를 받는 수급자들이 난파선의 승객으로 보일 것이다. 이들은 복지 수급자를 구명보트를 던져줘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무기력한 사람들로 낙인찍고, 따라서 국가는 선의로 이들을 구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인식구조에서 수급자는 공화국 시민으로서 권리를 갖지 못한, 단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사회의 열패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선별주의 복지가 타고 있던 배가 난파(시장의 실패)한 다음에 구조하겠다는 사후적인 복지라면, 보편주의 복지는 우선 배가 난파하지 않도록 튼튼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고 설사 난파하더라도 공화국의 시민답게 스스로 당당히 헤엄칠 수 있도록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모두는 그런 민주공화국을 지향한다. 이런 사실은 여러 지표로도 입증된다. 보편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재정건전성·고용률 등 모든 경제지표에서 매우 양호하고 빈곤율과 불평등 정도가 가장 낮은 반면에, 전형적인 선별적 복지국가인 일본과 미국은 경제지표가 매우 안 좋으며 특히 빈곤율과 불평등 정도가 가장 심한 편이다. 그 이유는 비교적 명백하다. 빈곤층을 선별하여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일본과 미국 같은 선별주의 사회는 부담자(납세자)와 수혜자(가난한 복지수급자)가 분리되기 때문에 빈곤 및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정책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중산층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세금을 내는 국가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과감한 사회정책을 펼칠 수 없다. 반면에 보편적 서비스 급여가 증가하게 되면 중산층은 공공서비스를 통해서 자신의 생활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복지국가를 지지하게 된다. 이를 학계에서는 ‘재분배의 역설’이라고 부르는데 스웨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웨덴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젊은 사람들이 기회의 땅 미국으로 취업을 많이 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아이를 낳고 키울 때가 되면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미국에서 연봉은 더 많이 받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다 보면 스웨덴처럼 튼튼하고 안전하며 건강한 사회적 인프라(보육, 교육, 의료 등)를 갖춘 나라에서 사는 것이 훨씬 삶의 질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국가비상사태는 1987년 체제의 한계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경제적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합법의 탈을 쓴 강자의 독주와 독선을 막지 못하여 결국 전체주의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현재 우리 사회처럼 극심한 소득불평등으로 내수기반마저 침식당하고 게다가 나아질 기미조차 없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길을 잃고 실종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집 나간 민주주의를 귀가시키기 위하여 추운 날에도 촛불을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올해 2017년은 1987년 체제의 구각을 벗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튼튼한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하여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우리 모두 한 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연대의식을 강화하여야 한다. 새로 개막되는 2017년 체제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답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