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공공의료는 왜 재미있나> 저자 쌀쌀한 12월 아침, 동부병원에는 삼삼오오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의무보조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대기실엔 칙칙한 긴장이 감돌았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든 사람, 수험표를 만지작거리는 사람, 웅크린 채 바닥을 응시하는 사람… 서로 알 법도 한데 말없이 그러고들 있었다. 면접이 시작되고 질문이 날아간다. “술 끊은 지 얼마나 되셨나요?” “저… 4개월이요.” 잠시 술렁인다. 이를 끊었다고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알코올중독자였다. “아이엠에프 때 노숙을 시작했고 술에 빠졌어요.” “1년간 단주에 성공했는데 재발해서 여기 입원했었어요.” 그러고 보니 낯이 익다. “환자들이 뭣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제가 겪었으니까요. 사람들 돌보며 저도 함께 회복하고 싶어요.” 몸짓은 의심과 경계를 풀지 못하면서도 눈빛은 기대와 열망을 말하고 있다. 오늘 면접은 노숙/중독을 극복한 ‘동료’가 앓고 있는 ‘동료’를 돌보게 되는 피투피케어(P2P케어, peer-to-peer care) 일자리의 첫 시도다. 우리는 열 사람을 선발하였다. 왜 동료(peer)인가? 동료는 같은 체험을 통해 깊은 이해와 독특한 정서를 공유한다. 이는 다년간의 전문교육으로도 얻기 어려운 특수자산이다. 예전에 노숙환자였다가 퇴원 후 간병인이 되어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어찌나 척척 잘하는지 환자들이 좋아한 것은 물론 의료진의 호응도 높았다. 자원봉사단 ‘동심’(동부의 심장)에도 그런 예가 많다. 환자가 환자를 돕고 노인이 노인을 돕고 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피투피케어 정신은 이미 우리 주위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이제 7주가 지났다. “힘든 일은 없으세요?” “선입견이요. 직원들이 저희를 보는 표정에서 느껴지는 게 있어요.” “어떤 식으로…?” “술 먹고 다시 난리 피우진 않을까 하는… 그럴 때마다 더 다짐해요. 다시는 술 먹지 않을 거다. 꼭 이겨낼 거다. 그래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어요.” “좋은 점은 없었나요?” 무슨 소리냐는 듯 화들짝 눈을 크게 뜬다. “많아요. 여기서 일하는 거 너무 좋아요. 얼마 전에 누가 퇴원하면서 저한테 감사하다고 했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온몸에 전기가 오는 것 같았어요.” “ㅎㅎ 그거 중독성 강한 건데요. 의사들도 그것 때문에 힘든 것 잊고 일하거든요.” “저도 힘들 때마다 그 생각을 해요. 너무도 뿌듯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끄럽다. 안팎으로 상황이 곱지 않다고 함부로 좌절하곤 했다. 아!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기쁨이고 설렘 아닌가. “바라는 건 없으세요?” “병원 일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고 싶어요.”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인강 듣고 있어요.” “인강이요?” “인터넷 강의요. 소방안전 자격을 따서 한 한기가 단축됐어요.” 흐뭇하게 웃는다. “이 일이 정규직으로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기간제 3교대에 임금도 많지 않다. “원장님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건가요?” “일단 저는 배를 항구에서 출항시켰고요, 이젠 여러분께 달린 거지요. 차근차근 그러면서도 성큼성큼 가봅시다.” 어떤 질환은 사회성을 회복하면 질환 자체가 나아버린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피투피케어 일자리는 단순 일자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마치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고치듯 서로에게 긍정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잃었던 자아상과 사회성을 되찾는다. 일자리 고민이 많은 시대에, 아직 완전하지 않은 모델이지만, 피투피케어 일자리는 앞으로 더욱 발굴되고 개발되고 창출될 것이다. 동부병원의 시도가 좋은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칼럼 |
[시론] 아팠던 이가 아픈 이를 돌보다 / 김현정 |
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공공의료는 왜 재미있나> 저자 쌀쌀한 12월 아침, 동부병원에는 삼삼오오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의무보조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대기실엔 칙칙한 긴장이 감돌았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든 사람, 수험표를 만지작거리는 사람, 웅크린 채 바닥을 응시하는 사람… 서로 알 법도 한데 말없이 그러고들 있었다. 면접이 시작되고 질문이 날아간다. “술 끊은 지 얼마나 되셨나요?” “저… 4개월이요.” 잠시 술렁인다. 이를 끊었다고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알코올중독자였다. “아이엠에프 때 노숙을 시작했고 술에 빠졌어요.” “1년간 단주에 성공했는데 재발해서 여기 입원했었어요.” 그러고 보니 낯이 익다. “환자들이 뭣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제가 겪었으니까요. 사람들 돌보며 저도 함께 회복하고 싶어요.” 몸짓은 의심과 경계를 풀지 못하면서도 눈빛은 기대와 열망을 말하고 있다. 오늘 면접은 노숙/중독을 극복한 ‘동료’가 앓고 있는 ‘동료’를 돌보게 되는 피투피케어(P2P케어, peer-to-peer care) 일자리의 첫 시도다. 우리는 열 사람을 선발하였다. 왜 동료(peer)인가? 동료는 같은 체험을 통해 깊은 이해와 독특한 정서를 공유한다. 이는 다년간의 전문교육으로도 얻기 어려운 특수자산이다. 예전에 노숙환자였다가 퇴원 후 간병인이 되어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어찌나 척척 잘하는지 환자들이 좋아한 것은 물론 의료진의 호응도 높았다. 자원봉사단 ‘동심’(동부의 심장)에도 그런 예가 많다. 환자가 환자를 돕고 노인이 노인을 돕고 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피투피케어 정신은 이미 우리 주위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이제 7주가 지났다. “힘든 일은 없으세요?” “선입견이요. 직원들이 저희를 보는 표정에서 느껴지는 게 있어요.” “어떤 식으로…?” “술 먹고 다시 난리 피우진 않을까 하는… 그럴 때마다 더 다짐해요. 다시는 술 먹지 않을 거다. 꼭 이겨낼 거다. 그래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어요.” “좋은 점은 없었나요?” 무슨 소리냐는 듯 화들짝 눈을 크게 뜬다. “많아요. 여기서 일하는 거 너무 좋아요. 얼마 전에 누가 퇴원하면서 저한테 감사하다고 했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온몸에 전기가 오는 것 같았어요.” “ㅎㅎ 그거 중독성 강한 건데요. 의사들도 그것 때문에 힘든 것 잊고 일하거든요.” “저도 힘들 때마다 그 생각을 해요. 너무도 뿌듯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끄럽다. 안팎으로 상황이 곱지 않다고 함부로 좌절하곤 했다. 아!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기쁨이고 설렘 아닌가. “바라는 건 없으세요?” “병원 일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고 싶어요.”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인강 듣고 있어요.” “인강이요?” “인터넷 강의요. 소방안전 자격을 따서 한 한기가 단축됐어요.” 흐뭇하게 웃는다. “이 일이 정규직으로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기간제 3교대에 임금도 많지 않다. “원장님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건가요?” “일단 저는 배를 항구에서 출항시켰고요, 이젠 여러분께 달린 거지요. 차근차근 그러면서도 성큼성큼 가봅시다.” 어떤 질환은 사회성을 회복하면 질환 자체가 나아버린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피투피케어 일자리는 단순 일자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마치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고치듯 서로에게 긍정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잃었던 자아상과 사회성을 되찾는다. 일자리 고민이 많은 시대에, 아직 완전하지 않은 모델이지만, 피투피케어 일자리는 앞으로 더욱 발굴되고 개발되고 창출될 것이다. 동부병원의 시도가 좋은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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