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 마을이 미래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말이 있다. 매력적인 구호지만 현실로 내려오면 갈 길이 멀다. 민주화 이후 국가복지가 늘어나고 최근에는 마을공동체기본법을 제정하는 움직임도 보이지만, 국가권력과 재벌의 뿌리깊은 지배동맹은 보편적 필요와 공공복리를 위한 공(公)과 공(共)의 위상을 지극히 왜소한 난쟁이로 만들어 놓았다. 활력있는, 전방위적 마을공동체의 재생과 그 기반 위에서 공(共), 공(公), 사(私)가 상생협력하는 한국형 다원적 발전모델로 가는 길은 어디에 열려 있을까. 새 마을공동체기본법을 제정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해결해야 할 과거 적폐가 있다. 새 마을만들기는 지금까지 미해결 난제로 남아 있는 마을재산권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마을재산권복원기본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최근 ‘동아시아의 커먼즈’라는 주제로 제주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그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는데 여기서 다시 그 연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마을재산은 어떤 운명을 걸어왔는가. 식민지시대에는 읍면제 시행으로 마을재산은 면으로 귀속되었다. 공유(共有)-공용림이 강권적으로 면유재산으로 편입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마을재산도 상당히 복원되었고 신민법(1958년)에서는 공동소유 유형으로 공유, 합유와 함께 ‘총유’ 형태가 신설되어 관습적 마을재산권에 대한 민법적 근거가 확립되었다. 이 총유 규정은 이전 의용민법에는 없었을뿐더러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한 제헌헌법조차 공과 사 이원적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실로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1961년) 등을 시행함으로써 신민법이 보장한 마을재산권을 짓밟고 마을재산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전시켰다. 이로써 마을주민들은 그들의 총유에 속하는 마을재산권을 박탈당했다. 박정희 정부의 대를 이어 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까지 만들어 칭송하는 새마을운동이란, 이런 마을재산권 박탈의 바탕 위에서 진행되었던 ‘위로부터 동원형 새마을만들기 운동’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지방자치시대가 열림으로써 마을주민들에게도 잃어버린 마을재산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중앙정부나 국회 수준에서 이전 시기 강권적 마을재산 박탈조치를 원인무효화하고 마을재산권을 복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실태조사를 한 적은 없었다. 국가는 의무를 방기했다. 마을주민들은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다투는 방식으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해야만 했다. 승소하기도 패소하기도 했다. 자료 미비, 재판 비용, 구성원 변화 등 다양한 사정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고통스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나 개발업자들이 이미 매각처분해버린 마을재산도 많다. 민주화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왜 마을주민들은 이런 곤혹스런 상황과 마주하고 있나. 박정희 정권이 짓밟은 지방자치제가 민주화시대에 부활되었음에도 국가는 잃어버린 마을재산을 되찾아주는 일을 방기했다. 때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을재산권 복원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마을재산권 박탈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진상을 조사하고 잃어버린 마을재산권을 되돌려주는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 마을재산의 상당부분은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신탁재산이다. 마을재산권 복원은 더 큰 과제인 마을자치권 복원과 마을공동체 발전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혹시 대선주자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대선주자들에게 ‘마을재산권복원기본법’ 제정을 약속할 것을 촉구한다. 이 ‘지연된 정의’는 더 이상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
칼럼 |
[시론] 마을재산권복원기본법 제정을 촉구한다 / 이병천 |
강원대 교수 마을이 미래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말이 있다. 매력적인 구호지만 현실로 내려오면 갈 길이 멀다. 민주화 이후 국가복지가 늘어나고 최근에는 마을공동체기본법을 제정하는 움직임도 보이지만, 국가권력과 재벌의 뿌리깊은 지배동맹은 보편적 필요와 공공복리를 위한 공(公)과 공(共)의 위상을 지극히 왜소한 난쟁이로 만들어 놓았다. 활력있는, 전방위적 마을공동체의 재생과 그 기반 위에서 공(共), 공(公), 사(私)가 상생협력하는 한국형 다원적 발전모델로 가는 길은 어디에 열려 있을까. 새 마을공동체기본법을 제정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해결해야 할 과거 적폐가 있다. 새 마을만들기는 지금까지 미해결 난제로 남아 있는 마을재산권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마을재산권복원기본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최근 ‘동아시아의 커먼즈’라는 주제로 제주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그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는데 여기서 다시 그 연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마을재산은 어떤 운명을 걸어왔는가. 식민지시대에는 읍면제 시행으로 마을재산은 면으로 귀속되었다. 공유(共有)-공용림이 강권적으로 면유재산으로 편입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마을재산도 상당히 복원되었고 신민법(1958년)에서는 공동소유 유형으로 공유, 합유와 함께 ‘총유’ 형태가 신설되어 관습적 마을재산권에 대한 민법적 근거가 확립되었다. 이 총유 규정은 이전 의용민법에는 없었을뿐더러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한 제헌헌법조차 공과 사 이원적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실로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1961년) 등을 시행함으로써 신민법이 보장한 마을재산권을 짓밟고 마을재산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전시켰다. 이로써 마을주민들은 그들의 총유에 속하는 마을재산권을 박탈당했다. 박정희 정부의 대를 이어 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까지 만들어 칭송하는 새마을운동이란, 이런 마을재산권 박탈의 바탕 위에서 진행되었던 ‘위로부터 동원형 새마을만들기 운동’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지방자치시대가 열림으로써 마을주민들에게도 잃어버린 마을재산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중앙정부나 국회 수준에서 이전 시기 강권적 마을재산 박탈조치를 원인무효화하고 마을재산권을 복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실태조사를 한 적은 없었다. 국가는 의무를 방기했다. 마을주민들은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다투는 방식으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해야만 했다. 승소하기도 패소하기도 했다. 자료 미비, 재판 비용, 구성원 변화 등 다양한 사정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고통스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나 개발업자들이 이미 매각처분해버린 마을재산도 많다. 민주화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왜 마을주민들은 이런 곤혹스런 상황과 마주하고 있나. 박정희 정권이 짓밟은 지방자치제가 민주화시대에 부활되었음에도 국가는 잃어버린 마을재산을 되찾아주는 일을 방기했다. 때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을재산권 복원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마을재산권 박탈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진상을 조사하고 잃어버린 마을재산권을 되돌려주는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 마을재산의 상당부분은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신탁재산이다. 마을재산권 복원은 더 큰 과제인 마을자치권 복원과 마을공동체 발전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혹시 대선주자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대선주자들에게 ‘마을재산권복원기본법’ 제정을 약속할 것을 촉구한다. 이 ‘지연된 정의’는 더 이상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