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3.06 18:35 수정 : 2017.03.06 19:02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3월8일 오후 3시 스톱!

여성들이 뿔났다. 오는 3월8일(세계여성의 날)에는 오후 3시까지만 일하고 퇴근해버리겠단다. 왜? 여성이 받는 임금을 따져보면 3시 이후의 업무는 공짜 노동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날 하루만큼은 공짜 노동을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독자들 중에는 ‘뭐지?’ 의아한 분도 있겠지만, 개선될 여지 없는 저임금과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여성들의 이유 있는 저항이다. 성별 임금격차 36%, 남성 임금이 100일 때 여성은 64를 받는다. 이젠 너무 익숙해서 별다른 느낌도 주지 못하는 수치지만, 한국 사회의 성별 불평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만 해도 집권 초기 고용률 70%라는 야심찬 목표 아래 여성 취업을 늘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취업률을 높인다고 임금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노동시장에 여성고용 문제가 있고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참여율과 임금격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째, 노동시장에 대한 접근이 틀렸다. 상식과는 달리 우리는 한국 노동시장이 갖는 특징과 문제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충분한 대응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엄청난 ‘비정규직 효과’, 노동시장의 어떤 보호나 규제 정책도 무력화시키는 비정규 고용의 덫이다. 여성노동자의 임신과 출산을 위한 보호제도가 20여개에 이르지만, 출산휴가를 제외하면 현장에서 제도 사용률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정규직 보호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의 실태 파악에서 정부와 민간 연구자들의 정의나 추계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더 현실적인 문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범주만으로는 한국 노동시장의 복잡다단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종업원 20명을 고용한 식당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인가? 특정한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정의상 그리고 통계적으로 정규직에 속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영세사업장의 경우 고용주의 자의에 따라 고용관계는 언제든 쉽게 종결될 수 있다. 이렇게 이론과 정책에서 비껴가는 노동인구의 다수가 여성이다. 그녀들에게 정규직을 위한 법적 보호는 그림의 떡이다.

둘째, 노동법과 노동정책에 내재하는 성역할 규범이다. 21세기 선진한국에서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실 독자들이 있겠지만, 한국의 노동법과 노동정책은 성차별적이고 보수적인 젠더규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일·가정 양립 지원은 모성보호제도의 하위조항으로 삽입되어 있고, 고용노동부의 정책 프레임 역시 육아휴직과 일·가정 양립 지원의 핵심은 여성 대상 사업으로 설정되어 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의 노동정책이 남성 생계부양자 규범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2002년 참여정부가 ‘남녀공동부양가족시대’를 선언했지만, 그동안 이 가족은 남성이 1을, 여성이 0.5를 버는 1.5인 소득자 가족으로 해석되어왔다.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책이 증거다.

셋째, 노동운동의 가부장성이다. 성별 임금격차가 문제라고 하지만, 실상 우리는 여성의 임금은 가족의 생계를 보조하는 것일 뿐 남성이 주된 부양자라는 암묵적인 동의 아래 살아왔고, 그것은 노동운동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뜨겁게 싸웠던 적이 있던가? 한국의 높은 성별 임금격차는 기업과 정부, 노동조합의 합작품이다. 가부장적 침묵의 카르텔, 이것이 성별 임금격차의 진실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