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공법학회 고문 국민 여러분 요즈음 많이 힘드시지요? 대한민국 헌법인 저 역시 심각한 오해로 많이 불편합니다. 1987년 민주항쟁을 거쳐 태어난 현재의 제가 어느덧 30살이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가까이는 1948년에, 멀리는 1919년에 이 땅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저를 구성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본권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구조를 포함한 국가시스템입니다. 권력구조의 기본은 대통령제를 취하면서, 국무총리제 등과 같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나라 전체가 큰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혼란 상황이 저 때문에, 특히 대통령제 때문에 빚어졌다고 주장되고 급기야는 제가 대한민국의 만 가지 악(萬惡)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원집정부제의 또 다른 이름인 ‘분권형 대통령제’가 마치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반대인 것으로 오해될 정도입니다. 도무지 수긍할 수 없는 비판에 즈음하여 적법절차의 원칙에 의거하여 항변하고자 합니다. 먼저 ‘제왕적 대통령제’의 명제입니다. 저를 공격하는 데 매우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최근 개헌론의 토대로서 마치 ‘닻내림효과’(정박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닻을 내린 배가 크게 움직이지 않듯이, 사람들은 종종 어떤 판단을 하게 될 때 초기에 접한 정보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 인해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역대 미국 행정부가 대외정책, 특히 전쟁과 관련해서 헌법상의 한계를 넘는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일찍이 슐레진저 교수가 제왕적 대통령직(The imperial presidency)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로 옮겨진 것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직’과 ‘제왕적 대통령제’는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대통령직이 제왕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이고, 후자는 대통령제 자체가 제왕적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제는 왕정을 대체한 것이어서 대통령의 직에는 국가원수와 같은 제왕적 흔적이 남아 있지만, 민주적 법치국가의 시대인 오늘날엔 그다지 우려할 만하지 않습니다. 닻내림효과를 정당하게 제어하기 위해서 현재 국가 혼란의 모든 문제가 전적으로 대통령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지금의 사태가 빚어졌다는 데 대해서 설득력 있는 실증적인 논증을 하였는지요? 혹시 지금의 저로 인해 자신이 꿈꾸는, 희망하는 그리고 강하게 열망하는 정치적 그 무엇을 얻기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이원집정부제를 비롯한 권력구조의 개편이 성공할 것이라는 실증적인 논증을 하였는지요? 지금 우리의 국내외적 상황이 과연 근 70년의 대통령제의 역사를 무시하고 권력구조의 개편과 같은 거대한 실험을 할 여건이 되는지요? 헌정질서는 현재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해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과연 급박한 실험의 실패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요? 태어난 30년 전과 지금이 완전히 다르며, 여러 주장의 최소한의 합의로써 만들어진 태생적, 시대적 한계로 인해 저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과연 입법부 등의 국가기관은 물론 공직자가 헌법의 정신과 가치에 입각하여 민주적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는 데 헌법에 규정한 대로 자신의 본연을 다하였는지 여부입니다. 많은 분들이 수긍할 정도라면, 오늘과 같은 상황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규정대로 헌법가치를 구현하고자 했으나 제도의 치명적인 흠결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때, 비로소 저에 대해 “현행 헌법, 너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둘러보지 않은 채 오로지 저만을 질책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그리고 앞날이 매우 걱정됩니다.
칼럼 |
[시론] 현행 헌법은 억울하다 / 김중권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공법학회 고문 국민 여러분 요즈음 많이 힘드시지요? 대한민국 헌법인 저 역시 심각한 오해로 많이 불편합니다. 1987년 민주항쟁을 거쳐 태어난 현재의 제가 어느덧 30살이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가까이는 1948년에, 멀리는 1919년에 이 땅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저를 구성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본권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구조를 포함한 국가시스템입니다. 권력구조의 기본은 대통령제를 취하면서, 국무총리제 등과 같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나라 전체가 큰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혼란 상황이 저 때문에, 특히 대통령제 때문에 빚어졌다고 주장되고 급기야는 제가 대한민국의 만 가지 악(萬惡)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원집정부제의 또 다른 이름인 ‘분권형 대통령제’가 마치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반대인 것으로 오해될 정도입니다. 도무지 수긍할 수 없는 비판에 즈음하여 적법절차의 원칙에 의거하여 항변하고자 합니다. 먼저 ‘제왕적 대통령제’의 명제입니다. 저를 공격하는 데 매우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최근 개헌론의 토대로서 마치 ‘닻내림효과’(정박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닻을 내린 배가 크게 움직이지 않듯이, 사람들은 종종 어떤 판단을 하게 될 때 초기에 접한 정보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 인해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역대 미국 행정부가 대외정책, 특히 전쟁과 관련해서 헌법상의 한계를 넘는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일찍이 슐레진저 교수가 제왕적 대통령직(The imperial presidency)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로 옮겨진 것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직’과 ‘제왕적 대통령제’는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대통령직이 제왕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이고, 후자는 대통령제 자체가 제왕적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제는 왕정을 대체한 것이어서 대통령의 직에는 국가원수와 같은 제왕적 흔적이 남아 있지만, 민주적 법치국가의 시대인 오늘날엔 그다지 우려할 만하지 않습니다. 닻내림효과를 정당하게 제어하기 위해서 현재 국가 혼란의 모든 문제가 전적으로 대통령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지금의 사태가 빚어졌다는 데 대해서 설득력 있는 실증적인 논증을 하였는지요? 혹시 지금의 저로 인해 자신이 꿈꾸는, 희망하는 그리고 강하게 열망하는 정치적 그 무엇을 얻기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이원집정부제를 비롯한 권력구조의 개편이 성공할 것이라는 실증적인 논증을 하였는지요? 지금 우리의 국내외적 상황이 과연 근 70년의 대통령제의 역사를 무시하고 권력구조의 개편과 같은 거대한 실험을 할 여건이 되는지요? 헌정질서는 현재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해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과연 급박한 실험의 실패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요? 태어난 30년 전과 지금이 완전히 다르며, 여러 주장의 최소한의 합의로써 만들어진 태생적, 시대적 한계로 인해 저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과연 입법부 등의 국가기관은 물론 공직자가 헌법의 정신과 가치에 입각하여 민주적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는 데 헌법에 규정한 대로 자신의 본연을 다하였는지 여부입니다. 많은 분들이 수긍할 정도라면, 오늘과 같은 상황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규정대로 헌법가치를 구현하고자 했으나 제도의 치명적인 흠결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때, 비로소 저에 대해 “현행 헌법, 너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둘러보지 않은 채 오로지 저만을 질책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그리고 앞날이 매우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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