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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9 18:38 수정 : 2017.03.29 21:00

황철우
박근혜퇴진광화문캠핑촌 촌민

넉달 보름, 긴 캠핑이 끝났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곳에서 한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봄이 찾아왔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말이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졌다. ‘박근혜퇴진 광화문캠핑촌’ 촌민들은 함께 울고 웃었다. 한겨울 노숙, 그에 버금가는 매연과 자동차 소음, 긴장의 연속인 촌민생활, 경찰의 퇴거 압박과 태극기 노인들의 해코지 등 모든 것이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예술가와 해고노동자들의 만남은 텐트촌과 문화예술 광장을 만들어냈다. 노동과 예술이 만나 한발 앞서 광장을 열었고 촛불의 역동성이 광장을 지켜냈다. 세월호가 떠오르고, 광화문 캠핑촌은 천막을 걷었다. 광화문 캠핑촌 이후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우리 사회도 변하고 내 삶도 달라지는 실천은 무엇일까?

3월11일, 박근혜 없는 첫날 캠핑촌에는 자그마한 추모마당이 차려졌다. 엘지(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목숨을 잃은 홍수연님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 노동자였던 그는 ‘욕받이’ 부서라는 해지방어팀에 배정되어 온갖 욕설과 비난, 실적 압박, 반복되는 시간외근무로 괴로워하다가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광화문 주변 음식점과 카페, 편의점은 촛불집회로 엄청난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제 노동자들이었다. 노동 강도는 몇 배로 늘어나지만 급여는 변함없고 촛불집회 참석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촛불집회도 자유롭게 참석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난 뒤 달라진 것은 없다. 이재용이 구속돼도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고, 무노조 경영은 변화가 없다. 정리해고, 노조탄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광장에는 쌍용자동차와 파인텍 노조의 깃발이 휘날리며, 정부청사 앞에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조의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1100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는 헛된 망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청년실업률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적폐청산 요구가 넘쳐나지만 국회는 잠자고 있으며, 온통 대선놀음이다. 박근혜 퇴진 이후 첫째 과제는 내 삶도 함께 바꾸는 변화다. 대통령이 바뀌고 제도적 민주주의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고 해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푸념과 조롱을 다시 들을 수 있다. 내 삶을 바꾸는 변화는 ‘노동의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최저임금 노동자 규모는 6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최저임금 준수를 강력하게 강제한다면 이 혜택은 엄청나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이 해소될 수 있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의 노조탄압을 법과 원칙에 따라 규제한다면 재벌 총수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노동하기 좋은 나라’로 물꼬를 바꿀 수 있다.

광화문 캠핑촌 해단식에서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노조 할 권리 쟁취! 4월22일 비정규직 1만 대행진’이 제안되었다. 캠핑촌을 지켜온 비정규 활동가들은 미뤄왔던 “비정규 노동자의 쉼터, 교육, 연대공간인 ‘꿀잠’을 짓기 위해 집중하겠다”고 밝히면서 사회적 참여와 연대를 호소했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분노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얻은 승리의 기쁨은 지속될 것이다. 광장의 자유와 열기를 몸소 체험한 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불평등을 해소해 나가는 작은 촛불로 되살아나야 한다. 내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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