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학자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 박근혜는 권좌에서 끌어내려져 탄핵당했고, 구속돼 지금 감옥에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체제는 달라진 것일까? 우리는 달라졌나? 지금 대선 국면은 어떠한가? 이런 질문들이 1600만 촛불들의 마음을 휘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마디로 말해, 이러자고 다섯달 동안 촛불을 든 것일까? 여기에 온몸을 던져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40미터 삼성 광고탑 위에 밧줄로 몸을 묶고, 8일째 곡기를 끊은 채 고공단식 중인 노동자들. 바로 대한민국 최장기 투쟁 사업장 콜트콜텍 노동자를 포함해, 정리해고당하고 비정규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해고당하고 노조파괴에 맞서 싸우다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해서 오른 6개 사업장 6인의 노동자들. 이들은 광화문 촛불이 켜져 있는 다섯달 동안 유령 아닌 유령이었다. 그 누구도 그들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 나라는 이들이 10년 장기투쟁 사업장이 되도록 주목하지 않았다. 이를 일컬어 ‘노동의 사회적 고립'이라고도 하고,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켜진 촛불도 주목하지 않았다. 1차 촛불이 켜지자마자, 이들이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발족한 때보다 8일 이른 11월1일 상경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시국농성'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작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아는가? 그들이 22차에 이르는 주말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평일의 촛불을 지켜온 주력 대오라는 사실을. 그들은 1차 촛불 이후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프레스센터 앞과 광화문광장의 평일 촛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켰다. 모두가 차수 변경하며 기록적인 속도로 경신하는 주말 촛불의 대단한 규모에 환호했지만, 촛불 시민들은 주말이 지나면 자신들의 일상과 일터로 돌아갔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촛불의 한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상을 바꾸지 못한 촛불, 형식화된 촛불. 하지만 틀렸다. 그 촛불은 평일에도 켜져 있었다. 사회적 원자들, 그리고 주력은 바로 이들 ‘박근혜 퇴진을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촛불은 다섯달 내내 앙상한 박근혜 탄핵만을 맴돌았다. 12월 국회 탄핵 이후로는 또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을 바꾸는 새 의지가 집약된 공통의 구호를 모으지 못했다. 그게 한계였다. 그리고 이제 이른바 ‘장미대선’. 집권욕을 유감없이 보이며 온통 나 잘났다, 날 믿어달라는 대선후보들의 말의 성찬. 촛불대선이라더니, 자신이 최고의 대리인이고 촛불 민심의 대변자라고 감히 주장하는 그들. 촛불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이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더니, 그게 아니었던가? 답은 아직 저 광화문에 있다. 박근혜 퇴진을 가장 먼저 외쳤던 노동자들이 노동악법 분쇄와 노동법 전면 제·개정을 요구하며 고공단식에 들어갔다. 이들이야말로 87년 6월항쟁의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사회적 민주화와 평등세상을 외치며 터져나온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의 후예들이다. 2017년 노동자 대투쟁은 이들 변경의 노동자들로부터 이제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이 투쟁은 이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2500만 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꾸려는 투쟁이다. 나는 촛불이 노동과 함께할 때 대한민국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4월22일부터 시작하는 동조단식 한끼 굶기와 노동절 전야인 4월30일 오후 7시 광화문 집회에 동참해주길 간곡히 호소한다.
칼럼 |
[시론] 광화문의 유령 아닌 노동자들 /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 박근혜는 권좌에서 끌어내려져 탄핵당했고, 구속돼 지금 감옥에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체제는 달라진 것일까? 우리는 달라졌나? 지금 대선 국면은 어떠한가? 이런 질문들이 1600만 촛불들의 마음을 휘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마디로 말해, 이러자고 다섯달 동안 촛불을 든 것일까? 여기에 온몸을 던져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40미터 삼성 광고탑 위에 밧줄로 몸을 묶고, 8일째 곡기를 끊은 채 고공단식 중인 노동자들. 바로 대한민국 최장기 투쟁 사업장 콜트콜텍 노동자를 포함해, 정리해고당하고 비정규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해고당하고 노조파괴에 맞서 싸우다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해서 오른 6개 사업장 6인의 노동자들. 이들은 광화문 촛불이 켜져 있는 다섯달 동안 유령 아닌 유령이었다. 그 누구도 그들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 나라는 이들이 10년 장기투쟁 사업장이 되도록 주목하지 않았다. 이를 일컬어 ‘노동의 사회적 고립'이라고도 하고,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켜진 촛불도 주목하지 않았다. 1차 촛불이 켜지자마자, 이들이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발족한 때보다 8일 이른 11월1일 상경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시국농성'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작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아는가? 그들이 22차에 이르는 주말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평일의 촛불을 지켜온 주력 대오라는 사실을. 그들은 1차 촛불 이후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프레스센터 앞과 광화문광장의 평일 촛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켰다. 모두가 차수 변경하며 기록적인 속도로 경신하는 주말 촛불의 대단한 규모에 환호했지만, 촛불 시민들은 주말이 지나면 자신들의 일상과 일터로 돌아갔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촛불의 한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상을 바꾸지 못한 촛불, 형식화된 촛불. 하지만 틀렸다. 그 촛불은 평일에도 켜져 있었다. 사회적 원자들, 그리고 주력은 바로 이들 ‘박근혜 퇴진을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촛불은 다섯달 내내 앙상한 박근혜 탄핵만을 맴돌았다. 12월 국회 탄핵 이후로는 또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을 바꾸는 새 의지가 집약된 공통의 구호를 모으지 못했다. 그게 한계였다. 그리고 이제 이른바 ‘장미대선’. 집권욕을 유감없이 보이며 온통 나 잘났다, 날 믿어달라는 대선후보들의 말의 성찬. 촛불대선이라더니, 자신이 최고의 대리인이고 촛불 민심의 대변자라고 감히 주장하는 그들. 촛불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이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더니, 그게 아니었던가? 답은 아직 저 광화문에 있다. 박근혜 퇴진을 가장 먼저 외쳤던 노동자들이 노동악법 분쇄와 노동법 전면 제·개정을 요구하며 고공단식에 들어갔다. 이들이야말로 87년 6월항쟁의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사회적 민주화와 평등세상을 외치며 터져나온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의 후예들이다. 2017년 노동자 대투쟁은 이들 변경의 노동자들로부터 이제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이 투쟁은 이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2500만 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꾸려는 투쟁이다. 나는 촛불이 노동과 함께할 때 대한민국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4월22일부터 시작하는 동조단식 한끼 굶기와 노동절 전야인 4월30일 오후 7시 광화문 집회에 동참해주길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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