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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08 18:34 수정 : 2017.05.08 19:22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4·16연대 공동대표

선거 때만 되면 인권은 실종된다. 인권은 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광장에서 뜨겁게 외쳤던 주장과 요구가 인권이었다. 광장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어떤 혐오발언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선이 시작된 뒤 대선 후보들의 입을 통해 혐오발언을 들어야 했다.

차별금지법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인권이슈였다.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자신의 존재를 이유로 차별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선언하는 게 차별금지법이다. 존재를 차별하지 말자는 사유 중에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들어 있는 것뿐인데 그게 ‘동성애 허용법’으로 둔갑하고, 보수 기독교세력의 표 압박에 눌린 대부분의 후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지 못했다. 차별금지법 하나도 제정 못할 사람들이 다음 정권의 대통령이 되어서 산적한 적폐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선거 때 인권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 호명될 뿐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대부분의 후보들은 비슷비슷한 공약을 내세웠다.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후보들은 이의 적극적인 해결을 약속했다. 복지와 관련해서도 그렇다. 재정 마련 대책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사회복지의 확충을 약속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인권의제인 공권력의 통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인권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을 뿐 인권의 내용들이다.

우리 헌법은 제2장에서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고 기본권이란 이름으로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인권이 불편하기 때문일까? 심지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고 공언하는 후보를 공격하면서도 인권은 슬쩍 뒷전으로 물린다. 그럼 대선에 나온 후보들은 과연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일까?

인권은 사람의 생명에서부터 경제적 평등까지 모두를 그 품 안에 아우른다. 근대 이후 국가의 목적은 인권에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사상의 자유를 봉쇄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말했다가는 당장 보수층의 표를 잃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종북 좌파라는 공격으로 막판 세몰이를 한 후보 쪽은 장애인에게 특정 후보를 찍는 연습을 시키고 유세장에 동원하기까지 했다.

광장의 촛불이 끝나갈 무렵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그렇지만 같은 시기에 남대서양에서 침몰된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 선원들에 대한 수색은 진행되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실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 광화문 광고탑 위에서는 생존권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26일째 고공단식농성을 이어간다. 거제도 조선소에서 노동절 휴일임에도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크레인이 무너져 깔려 죽은 일도 대선 기간에 일어났다. 위험한 일은 휴일도 못 찾아먹는 비정규직에 떠맡겨지는 게 현실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 또한 현실이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만 늘리겠다는 구호만큼 공허한 일도 없다. 이런 문제들을 따로따로 떼어놓고 사고하면 인권의 왜곡을 낳는다. 그래서 인간·사람의 전체를 놓고 보는 인권의 총체성이 중요하다.

지난겨울 광장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구호는 ‘이게 나라냐!’였다. 이번 촛불대선의 결과 당선된 대통령은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총체적인 인권의 실현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인권의 가치를 놓고 경쟁하는 선거 분위기를 볼 수는 없을까? 오늘 대한민국 비극의 원인은 인권의 가치를 뒷전으로 미루거나 취사선택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게 나라냐!’는 질문이 국민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도록 인권의 원칙과 관점에 충실한 대통령과 정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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