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노사정위원회를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비정규직 철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사정위를 통한 노동과 자본의 긴밀한 조정,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위한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암초가 가득한 목표다. 그 이유를 알려면 먼저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20년간 노동시장의 제도를 정초한 1998년의 반쪽자리 노사정 합의를 들여다봐야 한다. 98년 2월 양대 노총, 경총과 김대중 정부 인수위원회는 건강보험과 전교조 합법화를 노동이 받고,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제를 자본에 안겨주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건강보험의 혜택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갔지만, 정리해고와 파견제의 혜택은 자본에 돌아갔다. 자본은 유휴 노동력을 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었고, 노동력 수급을 핵심 정규직과 필요할 때만 쓸 비정규직으로 나눠 관리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98년 합의는 노동을 분단시켰다. 정리해고로 수만명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경험을 한 노동자들의 전략은 하나였다. 현직에 있는 동안 최장시간을 일함으로써 최대의 임금을 받아내는 ‘임금 극대화’가 그것이었다. 단위 노조들은 정리해고에 합의해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기업별 노조 시스템’에 더욱 몰입했다. 정규직 노조는 자본의 분리지배 전략에 암묵적으로 동조했고, 급증하는 비정규직의 존재는 정규직에게 더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 상승을 보장하는 ‘안전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새로 출범할 노사정위의 첫번째 장애물은 자본이다. 자본에 비정규직의 존재는 노동비용 유지와 노동통제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준 효자 같은 존재다. 국민적 지지를 업고 정부가 (정규직 임금인상 자제 없이) 자본을 압박하면, 잠깐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시늉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만큼 고용을 줄여 총노동비용은 유지하려 할 것이다. 노사정위의 두번째 장애물은 노동의 분열이다. 노총 지도부가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 임금 동결’과 교환하는 합의문에 서명하는 순간, 이번에는 정규직 노조들이 반발하면서 기존의 기업단위 임금교섭을 지속하려 할 것이다. 어떻게 자본을 설득할지보다, 어떻게 정규직 단위노조를 설득할지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오늘 정규직에 종사하는 모든 시민과 노조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길 원하는가? 손쉬운 선택은 오늘 나의 임금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아이들은 끝없는 스펙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해 정규직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 수준에서 합리적인 생존 추구가 집단적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규직이 높은 임금을 원할수록, 기업은 비정규직을 늘릴 것이다. 우리가 높은 임금을 원할수록, 우리의 아이들은 비정규직으로 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오히려 전사회적 수준에서 정규직의 임금을 자제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기본 조건을 만드는 것, 더 나아가 윗세대의 가족단위 생존투쟁을 끝내고 사회안전망, 보육 및 교육 시스템에 대한 사회세력간, 세대간 새로운 조율과 합의의 틀을 만드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보다 합리적 선택이다. 한 중앙노조 간부의 일성이 떠오른다. “자기 살 깎아서 남을 주려면 그 남이 남이 아니어야 한다.” 비정규직은 당신의 남인가? 그렇다고 답할 시민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과 나의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살 세상을 원하는가?
칼럼 |
[시론] 두 번째 노사정위를 위하여 / 이철승 |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노사정위원회를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비정규직 철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사정위를 통한 노동과 자본의 긴밀한 조정,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위한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암초가 가득한 목표다. 그 이유를 알려면 먼저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20년간 노동시장의 제도를 정초한 1998년의 반쪽자리 노사정 합의를 들여다봐야 한다. 98년 2월 양대 노총, 경총과 김대중 정부 인수위원회는 건강보험과 전교조 합법화를 노동이 받고,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제를 자본에 안겨주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건강보험의 혜택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갔지만, 정리해고와 파견제의 혜택은 자본에 돌아갔다. 자본은 유휴 노동력을 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었고, 노동력 수급을 핵심 정규직과 필요할 때만 쓸 비정규직으로 나눠 관리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98년 합의는 노동을 분단시켰다. 정리해고로 수만명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경험을 한 노동자들의 전략은 하나였다. 현직에 있는 동안 최장시간을 일함으로써 최대의 임금을 받아내는 ‘임금 극대화’가 그것이었다. 단위 노조들은 정리해고에 합의해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기업별 노조 시스템’에 더욱 몰입했다. 정규직 노조는 자본의 분리지배 전략에 암묵적으로 동조했고, 급증하는 비정규직의 존재는 정규직에게 더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 상승을 보장하는 ‘안전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새로 출범할 노사정위의 첫번째 장애물은 자본이다. 자본에 비정규직의 존재는 노동비용 유지와 노동통제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준 효자 같은 존재다. 국민적 지지를 업고 정부가 (정규직 임금인상 자제 없이) 자본을 압박하면, 잠깐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시늉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만큼 고용을 줄여 총노동비용은 유지하려 할 것이다. 노사정위의 두번째 장애물은 노동의 분열이다. 노총 지도부가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 임금 동결’과 교환하는 합의문에 서명하는 순간, 이번에는 정규직 노조들이 반발하면서 기존의 기업단위 임금교섭을 지속하려 할 것이다. 어떻게 자본을 설득할지보다, 어떻게 정규직 단위노조를 설득할지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오늘 정규직에 종사하는 모든 시민과 노조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길 원하는가? 손쉬운 선택은 오늘 나의 임금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아이들은 끝없는 스펙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해 정규직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 수준에서 합리적인 생존 추구가 집단적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규직이 높은 임금을 원할수록, 기업은 비정규직을 늘릴 것이다. 우리가 높은 임금을 원할수록, 우리의 아이들은 비정규직으로 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오히려 전사회적 수준에서 정규직의 임금을 자제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기본 조건을 만드는 것, 더 나아가 윗세대의 가족단위 생존투쟁을 끝내고 사회안전망, 보육 및 교육 시스템에 대한 사회세력간, 세대간 새로운 조율과 합의의 틀을 만드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보다 합리적 선택이다. 한 중앙노조 간부의 일성이 떠오른다. “자기 살 깎아서 남을 주려면 그 남이 남이 아니어야 한다.” 비정규직은 당신의 남인가? 그렇다고 답할 시민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과 나의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살 세상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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