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교수·예방의학 북쪽 어린이 370만명에게 남쪽이 제공한 B형 간염 예방백신을 놓아 주었을 때는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내가 의사 노릇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정부하에서는 북쪽에서 오라고 해도 남쪽에서 방북을 승인하지 않아 못 갔는데, 이제 남쪽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방북 승인을 검토하기 시작하니 이번엔 북쪽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쪽에 사는 의사입니다. 전공은 예방의학입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2005년 초기 계획서를 제출한 것을 계기로 세계보건기구 그리고 남쪽 민간단체가 진행한 영유아사업 등 남북 보건의료 교류 사업에 오래 전문가로 참여해 왔습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남북을 오가면서 평양, 남포 등에 있는 어린이병원과 산원을 보수하고 어린이들에게 영양식을 전달했습니다. 때론 어떻게 사업을 해야 더 효과가 있을지를 두고 북쪽 전문가와 종일 토론도 하고 참사들과 티격태격도 했지만 그래도 참 보람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특별히 ‘5·24 조치’ 등 경색국면에서 북쪽 어린이 370만명에게 남쪽이 제공한 B형 간염 예방백신을 놓아 주었을 때는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내가 의사 노릇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북에는 간염 환자가 많아 고생이 심했는데, 이 대규모 예방접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앞으로 북쪽에서 신규 B형 간염 환자는 거의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이 힘을 모아 이런 일을 해내다니 얼마나 멋집니까? 북쪽 전역으로 예방접종 시행을 독려하러 다니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타버린 북쪽 예방접종 담당자에게 저는 “정말 큰일을 해냈다. 복받을 것”이라고 칭찬하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남북협력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약 310만명의 북쪽 어린이에게 일본뇌염 예방접종 주사도 놓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애초 550만명의 북쪽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홍역, 풍진 예방접종 사업이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중단돼 버린 겁니다. 이후 아직까지도 300만명의 어린이들이 예방주사를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박근혜 정부하에서는 북쪽에서 오라고 해도 남쪽에서 방북을 승인하지 않아 못 갔는데, 이제 남쪽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방북 승인을 검토하기 시작하니 이번엔 북쪽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휴전선 근방 말라리아 공동방제를 위해 방북신청을 했던 민간단체가, 또 며칠 전에는 북쪽 어린이의 의료지원을 위해 방문하려던 단체가 북쪽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1984년 8월 서울·경기·충청 일원에 내린 집중호우로 남쪽이 사망 및 실종 189명, 이재민 35만여명의 큰 피해를 입었을 때, 북은 남쪽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쌀과 의약품 등을 보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이루어진 최초의 물자 지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1995년 북에서 큰물 피해를 입었을 때, 2004년 용천역에 큰 사고가 났을 때 남쪽은 북에 인도적 지원을 했습니다. 남북은 이렇게 대치하면서도 도울 땐 서로 도우며 지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님, 남북이 서로 다툴지라도 인도적 지원만큼은 정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질병과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과 이웃을 모르는 체하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또한 2010년 천안함 사건 등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가 대북 말라리아 방역 지원을 중단한 탓에 남쪽 내 말라리아 환자도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다시 지원 사업을 재개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모두 이런 어리석음을 또다시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인도적 지원은 무기가 아닙니다. 인도적 교류는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되고, 정치적으로 금지돼서도 안 됩니다. 더욱이 남북간 인도적 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씨앗입니다. 이것이 땅에 뿌려지지 않으면 한반도엔 희망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님, 거절당한 방북신청을 다시 합니다. 이번에는 부디 남북 모두 우리의 방북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들 싸움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인 어린이들을 보듬어 안는 따뜻한 지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연로할 대로 연로한 이산가족들이 죽기 전에 만나 얼굴이라도 쓰다듬고 손이라고 꼬옥 잡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제 다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도적 교류의 통로만큼은 닫지 말아 주십시오. 내년 6월15일은 올해처럼 슬픈 기념일이 되지 않게 남북 모두 그간 서로 약속한 것들을 지켜 주십시오. 평화와 통일, 민족의 번영, 화해와 인권, 이 모두를 화려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십시오. 그 행동의 시작이 바로 남북간 인도적 교류입니다. 그럼 기쁜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칼럼 |
[시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께 / 신영전 |
한양대 교수·예방의학 북쪽 어린이 370만명에게 남쪽이 제공한 B형 간염 예방백신을 놓아 주었을 때는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내가 의사 노릇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정부하에서는 북쪽에서 오라고 해도 남쪽에서 방북을 승인하지 않아 못 갔는데, 이제 남쪽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방북 승인을 검토하기 시작하니 이번엔 북쪽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쪽에 사는 의사입니다. 전공은 예방의학입니다.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2005년 초기 계획서를 제출한 것을 계기로 세계보건기구 그리고 남쪽 민간단체가 진행한 영유아사업 등 남북 보건의료 교류 사업에 오래 전문가로 참여해 왔습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남북을 오가면서 평양, 남포 등에 있는 어린이병원과 산원을 보수하고 어린이들에게 영양식을 전달했습니다. 때론 어떻게 사업을 해야 더 효과가 있을지를 두고 북쪽 전문가와 종일 토론도 하고 참사들과 티격태격도 했지만 그래도 참 보람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특별히 ‘5·24 조치’ 등 경색국면에서 북쪽 어린이 370만명에게 남쪽이 제공한 B형 간염 예방백신을 놓아 주었을 때는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내가 의사 노릇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북에는 간염 환자가 많아 고생이 심했는데, 이 대규모 예방접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앞으로 북쪽에서 신규 B형 간염 환자는 거의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이 힘을 모아 이런 일을 해내다니 얼마나 멋집니까? 북쪽 전역으로 예방접종 시행을 독려하러 다니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타버린 북쪽 예방접종 담당자에게 저는 “정말 큰일을 해냈다. 복받을 것”이라고 칭찬하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남북협력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약 310만명의 북쪽 어린이에게 일본뇌염 예방접종 주사도 놓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애초 550만명의 북쪽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홍역, 풍진 예방접종 사업이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중단돼 버린 겁니다. 이후 아직까지도 300만명의 어린이들이 예방주사를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박근혜 정부하에서는 북쪽에서 오라고 해도 남쪽에서 방북을 승인하지 않아 못 갔는데, 이제 남쪽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방북 승인을 검토하기 시작하니 이번엔 북쪽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휴전선 근방 말라리아 공동방제를 위해 방북신청을 했던 민간단체가, 또 며칠 전에는 북쪽 어린이의 의료지원을 위해 방문하려던 단체가 북쪽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1984년 8월 서울·경기·충청 일원에 내린 집중호우로 남쪽이 사망 및 실종 189명, 이재민 35만여명의 큰 피해를 입었을 때, 북은 남쪽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쌀과 의약품 등을 보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이루어진 최초의 물자 지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1995년 북에서 큰물 피해를 입었을 때, 2004년 용천역에 큰 사고가 났을 때 남쪽은 북에 인도적 지원을 했습니다. 남북은 이렇게 대치하면서도 도울 땐 서로 도우며 지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님, 남북이 서로 다툴지라도 인도적 지원만큼은 정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질병과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과 이웃을 모르는 체하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또한 2010년 천안함 사건 등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가 대북 말라리아 방역 지원을 중단한 탓에 남쪽 내 말라리아 환자도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다시 지원 사업을 재개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모두 이런 어리석음을 또다시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인도적 지원은 무기가 아닙니다. 인도적 교류는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되고, 정치적으로 금지돼서도 안 됩니다. 더욱이 남북간 인도적 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씨앗입니다. 이것이 땅에 뿌려지지 않으면 한반도엔 희망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님, 거절당한 방북신청을 다시 합니다. 이번에는 부디 남북 모두 우리의 방북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들 싸움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인 어린이들을 보듬어 안는 따뜻한 지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연로할 대로 연로한 이산가족들이 죽기 전에 만나 얼굴이라도 쓰다듬고 손이라고 꼬옥 잡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제 다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도적 교류의 통로만큼은 닫지 말아 주십시오. 내년 6월15일은 올해처럼 슬픈 기념일이 되지 않게 남북 모두 그간 서로 약속한 것들을 지켜 주십시오. 평화와 통일, 민족의 번영, 화해와 인권, 이 모두를 화려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십시오. 그 행동의 시작이 바로 남북간 인도적 교류입니다. 그럼 기쁜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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