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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9 18:20 수정 : 2017.07.19 20:39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91년 5월 서강대에서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투신하며 남긴 유서로 인해 운동권은 도덕적 치명상을 입었다. 검찰은 어떤 시인이 말한 죽음의 굿판 프레임으로 전쟁을 완성하였다. 재판 결과 강기훈은 유서를 대신 써주고 동료의 죽음을 방조한 비정한 인물로 전락하였다. 이 사건의 진실이 완전히 규명되기까지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였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검찰의 대필조작 사건임을 밝히고 재심을 권고하였다. 2015년 대법원은 강기훈씨에게 마침내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사이 강기훈의 부모는 한을 품고 스러져갔고 본인도 옥살이 후 암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제 죄와 책임을 계산해야 할 시간이 왔다. 2017년 7월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강기훈씨가 조작사건에 관여한 검사와 감정인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와 감정인에게 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조작의 핵심인 검사들에게는 고의나 중과실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유서대필 조작사건에서 검사에게 책임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이 판결이 선배 법률가들에 대한 동업자적 배려의 결과가 아닌지 의문을 가진다.

실제로 재판에 관여한 법률가들이 잘못된 판결을 이유로 책임을 추궁당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독일에서도 법을 왜곡하여 부정의한 판결을 내리는 법관을 처벌하는 법왜곡죄가 있지만 동료 법조인들을 상대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판사들은 전문용어의 안개 속에서 법조인의 책임을 마사지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서 고의와 중과실이 바로 그러한 장애물로 작동하였다.

강기훈 사건은 검사의 과오와 판사의 오판이 빚어낸 불행이 아니라 정권을 구하고 운동권을 파괴하기 위해 정치적 각본에 따라 진행된 국가범죄였다.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이 체포감금죄의 교사범이나 간접정범이라면, 허위감정을 한 감정인은 종범이고 판사들은 정범이나 책임 없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의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 한다.

어쨌든 판사에게는 오판에 대해 고의나 중과실이 존재하지 않을 여지가 있지만 이와 같은 사건에서 검사의 고의는 피할 수 없다. 그는 인과관계의 일부가 아니라 인과관계의 총연출자이기 때문이다. 운동권을 상대로 한 검찰의 성전에서 검사에게는 고의를 초과하는 적대성 의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강기훈에게 유리한 증거자료를 의도적으로 법정에 현출하지 않거나 유리한 증거를 불리한 증거로 둔갑시키는 행위나 불법수사와 가혹행위는 이러한 적대성의 부수 행태들이다.

이 사건에서 검사의 모든 행태는 공직자의 객관의무를 위반한다. 잘못된 범죄 프레임과 양립할 수 없는 증거들이 수차례 나왔는데도 검찰은 강기훈을 자살관여죄로 몰고 갔다. 검찰은 강기훈에게 유리한 증거자료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거나 유야무야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법원의 오판을 유도하였다. 검사가 자신의 확신에 따라 직무에 충실하게 행동했으므로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검사는 확신범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의도에 영합하며 범죄적 확신을 추구하는 확신범 검사를 원치 않는다.

이번 판결은 모든 합리적 의심을 말살하고 그릇된 범죄적 프레임을 관철시킨 검사를 면책시켰다. 사법개혁, 검찰개혁이 무엇인가? 공직자의 책임을 냉정하게 추궁하는 법리를 확립하는 것이다. 어쨌든 항소심 재판에서는 이 조작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의 지향과 행위를 정확하게 포착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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