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970년대 말 일회용 생리대의 등장은 피임약만큼이나 여성에게는 ‘해방’ 그 자체였다. 빨아 쓰던 면 생리대와는 달리 일회용 생리대는 ‘현대성’과 ‘위생’의 상징으로 환영받았다. ‘여성친화적’이란 기업의 이미지와 함께, 생리대 제조업은 불황을 모르는 산업으로 번창했다. “한 달에 한 번 마법이 걸린다” “순수와 순백 체험” “울트라슬림” “바디피트” “건강한 자유” “예의 있는 미인” 등으로 묘사되는 생리대 광고는 여성의 고통스러운 월경을 순결이나 신비로 포장했다. 그러나 정작 생리대가 여성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의 원료, 유해성, 여성 몸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유해성이 없는 면 생리대를 사용, 보급하는 운동을 벌여왔다. 그런데 이 단체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건의 개요는 단순하다. 여성환경연대는 시판되는 생리대의 다양한 부작용을 호소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사례를 접수했고, 생리대 유해 물질이 여성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검증된 외국 사례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정부와 기업에 책임 있는 조사 및 조치를 요구해왔으나, 번번이 무시당했다. 2016년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매출 상위 제품에 대한 유해 환경 실험을 강원대 연구팀에 의뢰했다. 2017년 3월 그 결과를 해당 기업체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알렸고 위해성 여부와 기준을 마련해주도록 요구했다. 여성환경연대는 당시 전수조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제품명이나 회사를 밝힐 수 없었다. 최근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식약처는 온라인 카페에서 특정 브랜드 제품의 이름이 공론화되자, 여성환경연대의 자료가 과학적이지 않고 신빙성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한 관련 기업은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으로 연구진을 고발했고, 일부 남성 네티즌은 자격 없는 여성단체라며 냉소적 비난을 퍼부었다. 부작용을 호소한 여성 소비자들과 여성환경연대는 졸지에 ‘문제를 일으킨 자’로 비난받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식약처의 반응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권위주의 국가의 전형성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민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개선을 위한 장기적 계획은 없으며, 임시방편적인 ‘조처’만 남발하면서, 자본의 지속적 유통에 협력하는 모습 말이다. 메르스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의 위기를 통해 드러난 바로 그 얼굴이다. 이는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개선을 도모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 풍요를 위한 자연 파괴는 임계점에 도달했고,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유해 여부가 확인되고, 아픈 사람이 나타날 때, 신속하게 개입하고 경청하는 정부가 절실해진다. 정부가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회피와 덮기의 주체가 될 때, 시민사회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치며 생리대의 전 성분 조사와 여성 몸의 영향력에 대한 역학조사를 국가에 요청했다. 국가가 시민과 싸우려 들 때, 기업이 소비자에게 ‘소송’ 운운하며 입 다물라 윽박지를 때, 시민들은 졸지에 난민이 된다. 하지만 난민처럼 느끼는 바로 그 순간, 국가와 기업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허구성’을 직시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평등한 파트너로 시민사회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국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칼럼 |
[시론] 국가가 시민과 싸우려 들 때 / 김현미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970년대 말 일회용 생리대의 등장은 피임약만큼이나 여성에게는 ‘해방’ 그 자체였다. 빨아 쓰던 면 생리대와는 달리 일회용 생리대는 ‘현대성’과 ‘위생’의 상징으로 환영받았다. ‘여성친화적’이란 기업의 이미지와 함께, 생리대 제조업은 불황을 모르는 산업으로 번창했다. “한 달에 한 번 마법이 걸린다” “순수와 순백 체험” “울트라슬림” “바디피트” “건강한 자유” “예의 있는 미인” 등으로 묘사되는 생리대 광고는 여성의 고통스러운 월경을 순결이나 신비로 포장했다. 그러나 정작 생리대가 여성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의 원료, 유해성, 여성 몸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유해성이 없는 면 생리대를 사용, 보급하는 운동을 벌여왔다. 그런데 이 단체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건의 개요는 단순하다. 여성환경연대는 시판되는 생리대의 다양한 부작용을 호소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사례를 접수했고, 생리대 유해 물질이 여성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검증된 외국 사례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정부와 기업에 책임 있는 조사 및 조치를 요구해왔으나, 번번이 무시당했다. 2016년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매출 상위 제품에 대한 유해 환경 실험을 강원대 연구팀에 의뢰했다. 2017년 3월 그 결과를 해당 기업체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알렸고 위해성 여부와 기준을 마련해주도록 요구했다. 여성환경연대는 당시 전수조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제품명이나 회사를 밝힐 수 없었다. 최근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식약처는 온라인 카페에서 특정 브랜드 제품의 이름이 공론화되자, 여성환경연대의 자료가 과학적이지 않고 신빙성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한 관련 기업은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으로 연구진을 고발했고, 일부 남성 네티즌은 자격 없는 여성단체라며 냉소적 비난을 퍼부었다. 부작용을 호소한 여성 소비자들과 여성환경연대는 졸지에 ‘문제를 일으킨 자’로 비난받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식약처의 반응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권위주의 국가의 전형성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민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개선을 위한 장기적 계획은 없으며, 임시방편적인 ‘조처’만 남발하면서, 자본의 지속적 유통에 협력하는 모습 말이다. 메르스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의 위기를 통해 드러난 바로 그 얼굴이다. 이는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개선을 도모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 풍요를 위한 자연 파괴는 임계점에 도달했고,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유해 여부가 확인되고, 아픈 사람이 나타날 때, 신속하게 개입하고 경청하는 정부가 절실해진다. 정부가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회피와 덮기의 주체가 될 때, 시민사회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치며 생리대의 전 성분 조사와 여성 몸의 영향력에 대한 역학조사를 국가에 요청했다. 국가가 시민과 싸우려 들 때, 기업이 소비자에게 ‘소송’ 운운하며 입 다물라 윽박지를 때, 시민들은 졸지에 난민이 된다. 하지만 난민처럼 느끼는 바로 그 순간, 국가와 기업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허구성’을 직시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평등한 파트너로 시민사회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국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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