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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2 17:48 수정 : 2017.09.13 00:34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김종옥씨의 그날 이야기

김종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원

9월5일 이후 일주일간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우리에게는 참 희한한 시간이었다.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일어난 집중 관심은 예전에 못 보던 풍경으로,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지으려는 계획은 단계마다 번번이 막혔었다. 지역 국회의원의 공약을 믿은 주민들은, 마치 다 된 한방병원을 특수학교가 차지하기라도 하는 듯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그 진실은, 학교였던 곳에 학교를 짓는다는 것이고, 한방병원이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말대로 지역표를 의식한 의원의 ‘허구의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이 명백한 진실이 확고부동한 사실로 결론이 나기까지 장애 부모들은 눈물과 한숨의 숱한 과정을 겪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세월이 바뀐 걸까. 우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우리의 이야기가 폭발하는 낯선 풍경을 보고 있다. 무엇이 이웃의 냉담을 몰아내고 있는 걸까. 무엇이 세상을 설득하고 있는 걸까.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는 “무릎 꿇은 엄마들”로 불리었다. 물론 무릎을 꿇는다는 행위 자체를 마뜩잖아하는 이도 많다. 맞는 지적이다. 누구든 그렇게까지 비참해지지 말아야 한다. 무릎을 꿇는 이에게나 그것을 보는 이에게나 그것은 모두 수모와 모멸의 풍경이다. 더구나 상대가 ‘옜다, 그깟 무릎 나도 꿇는다’는 식으로 맞서 꿇는다면 모두에게 부끄럽고 처참한 일이다(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두번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릎을 꿇었다. 세시간 동안 “왜 하필 우리 지역에!”라는 한결같은 고함을 들었던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보일 방법이 그 현장에선 그것밖에 없었다. 수모니 자존감이니 그런 것들을 다 팽개치고 오직 내 새끼가 두시간씩 걸리지 않고 다닐 수 있는 학교 하나만 바라보는 마음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무릎 꿇은 장면을 우리 친정엄마는 보지 말았기를, 우리 새끼는 보지 말았기를.

이참에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이웃이 안 좋아하는데 왜 굳이 거기다 지으려 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 가족과 한 마을 사람 되는 것이 왜 그렇게 싫은 일일까. 왜 안 좋으냐고 물으면 ‘보기 싫어서’라고 무심코 답한다. 동어반복이다. 하지만 실은 그 말이 본질이다. 거기서부터가 잘못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건강하지 않게 만들고 있는 맹목적인 차별과 배제의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주민들이 안 좋아하는 게 아직은 현실이니까 뭔가 위안이 될 만한 시설들을 함께 해주면서 협상해가자고 말하는 이도 있다. 도대체 장애 학생의 학교가 있다는 것이 주민을 ‘위로’해야 할 만큼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인지. 장애인 시설이 기피시설임을 인정하고 하는 말을, 그 생각을, 비록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인정’할 수는 없다. 이미 쓰레기처리장도 있는데, 왜 우리 지역에만 기피시설을 또 짓느냐는 말을 여과 없이 쏟아낼 때, 그 혐오의 발언을 인정하고 타협과 협상을 하자고 한다면 앞으로도 우린 계속 구걸하듯 무릎을 꿇어야 하고, 되도록 안 보이는 곳으로 피해 다녀야 한다.

특수학교 자체로도 좋은 일이라서 뭘 끼워팔기 안 해도 모두가 환영하는 시대가 성큼 오기를 바란다. 모든 순간 낯선 세상에 서 있는 우리 아이들이 이웃의 환대를 받으면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다 보면 모든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통합교육을 받는 그런 시대도 오리라. 그때가 되면 꿇었던 무릎보다 더 아팠던 시간들을 추억담으로 얘기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건 절대 ‘가상의 희망’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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