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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8 18:32 수정 : 2017.12.18 19:18

김상철
서울시시민참여예산지원협의회 회장

최근 어느 지방정부의 참여예산학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평소 참여예산제에 자부심이 컸던 담당자가 곤혹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했다. 국정감사에서 현재 시행 중인 참여예산제도에 대한 질의가 있었나 본데, 행정안전부에서 전체 예산 대비 참여예산 비중으로 순위를 매겨 제출한 자료가 화근이었나 보다. 순식간에 하위권이 되어버린 터라 오랜 기간 공들여 제도를 운영했던 처지에선 억울했을 법했다. 그러곤 ‘결국 1위 사례를 좇아 하는 수밖에 없질 않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일이 떠오른 건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방정부의 참여예산제도 운영실적에 대해 시범평가를 하겠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내용인즉 2018년부터 주민참여예산제도 운영실적을 본격적으로 평가할 예정인데 사전에 이에 대한 시범평가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예산제는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지자체 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참여가 의무화됨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국민참여예산제를 재정혁신의 일환으로 실행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의 이번 평가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부실평가다. 이번 평가의 근거로 ‘지방재정법’ 제39조 제3항을 내세웠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고 해놓았을 뿐 정작 시행령에는 세부적인 평가 절차나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 현재 시행하고 있다는 평가기준에 대한 연구용역 역시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친 것도 아닐뿐더러 완료되지도 않았다.

둘째, 평가지표의 한계다.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평가지표는 정량지표 5개 항목에 40점, 정성지표 4개 항목에 60점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예산 대비 참여예산사업 비중이나 전체 인구 대비 참여예산 교육자 비중은 단순히 양적 지표로 따질 수 없다. 지역마다 여건이 달라서 광역지방정부라 하더라도 최대(서울), 최소(울산) 인구 차가 880만명이고 재정규모도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정성적 평가기준 역시 주민 대표성이나 확산 가능성이 참여예산제의 본질에 해당하는 기준인지 모르겠다.

셋째, 철학의 부재다. 행정안전부는 평가를 통해 지방정부의 참여예산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평가제도로는 전국 공통의 천편일률적인 제도만 만들 뿐이다. 실제로 과거 행정안전부가 만들어서 보급한 참여예산제 조례 모델 3가지는 지역 여건에 맞는 참여예산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여론조사 수준의 제도 운영만으로도 참여예산제를 한다고 말할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46조에는 공청회, 설문조사가 여전히 참여예산제 방식으로 제시돼 있다. 당장 시행령부터 바꿔야 순서에 맞는다.

행정안전부는 작년 7월에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위원 수를 15명 이내로 하고 그중 4분의 1을 공무원으로 할 수 있도록 지방재정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당시 비판의 골자는 행정안전부가 실제 운용되는 참여예산제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지난 6년 동안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던져준 기성복을 맞춤복으로 고쳐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지역마다 고유한 차이를 드러내기보다는 높은 순위의 제도를 모방하게 될 것이다.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말하는 정부에서 시대착오적인 중앙정부 주도의 제도 평가가, 그것도 공론과 숙의도 없이 졸속으로 시행된다니 유감이다. 백번 양보해도 평가 이전에 평가의 목적과 절차,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순서다.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 기준을 평가하겠다는 건 일말의 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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