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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30 18:13 수정 : 2018.01.30 18:56

하정호
청소년플랫폼 마당집 대표

무려 82.2%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조사가 잘못된 것이겠지. 그렇게나 많은 이삼십대가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반대했을 리가 없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영화 <1987>에 감동했던 그들이지 않나. 하지만 기사는 사실이었다. 아이스하키 팀의 엄수연 선수는 말했다. “아이스하키를 원래 모르셨던 분들이 통일 하나만으로 갑자기 아이스하키를 생각하고 저희를 이용하는 것 같은데, 지금 땀 흘리고 힘들게 운동하는 선수들 생각 한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에는 어른들에 대한 서운함이 짙게 배어 있다. 메달을 따면 이제까지의 서러움은 깨끗이 씻어내고 어엿하게 어깨를 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으리라. 그 기회를 빼앗겼을 때의 박탈감에 청년세대들이 동조한 것이다. 청년세대는 자신을 ‘무지 고생만 하고 이용당하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스펙’을 쌓아봤자 좋은 정규직 갖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청년들이 너도나도 암호화폐 채굴에 뛰어드는 것도 일확천금으로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바람 때문이리라. ‘왜 우리만 손해 보고 살아야 하냐’는 분노가 아니고서는 이런 일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바람은, 제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해달라는 것. 문재인 정부가 한 약속. 그것 하나다.

교육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청년들은 불평등한 교육구조에서 자라났다. 몇몇 학생의 들러리로 십수년을 살면서 온갖 꾸지람 속에서 모멸의 시기를 견뎌야 했다. 학교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향상될 권리’를, 사회적 차원에서는 ‘무시당하지 않을 권리’를, 정치적 차원에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번스타인은 말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가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보장해준 적이 있었던가. 자기 등짝에 등급이 매겨지고 나면 도무지 지워내기 힘들다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그 등급이 부모의 경제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면 어찌해야 할까?

일례로 한 외고에서는 대부분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국제학위인증제도(IBDP)를 마치면 해외 유수의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데, 그 비용이 수천만원에 이른다. 그들과 일반고 학생들은 같은 나라에 살지만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분명하다. 아이들이 청년의 기백을 잃지 않게 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교학점제’는 우리 교육의 근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서처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개인별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원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수업을 들으며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업교육을 받고 싶으면 직업교육을, 경제 공부를 하고 싶으면 경제 공부를 할 수 있다. 세종시교육청의 경우 대학처럼 하나의 캠퍼스 안에 과학, 예술, 인문 집중 고등학교를 세워, 체육관과 운동장을 같이 쓰며 수업을 넘나들 수 있게 설계한 공동교육과정을 2021년까지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이제 우리 교육도 지역 내의 대학, 기업,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다양한 수업을 하고 그것을 학점으로 인정해주게 되었다. 하지만 교육부의 의지와 달리 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대응은 너무 안이하기만 하다. 이제 더 이상 입시제도와 사회구조를 탓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청년들의 분노는 인내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한편을 청년세대에게 내주고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선택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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