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폐지한다.” 달랑 한 줄짜리 조례 폐지안이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 2일 충남도의회 인권조례 폐지안 가결은 대한민국에서 최초, 아마도 전 세계를 통틀어 최초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변곡점은 폐지안 가결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십여 년간 지속되어온 혐오정치의 변이종에 가깝다. 보수 개신교 세력 일부가 주도하여 각종 법과 조례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문제 삼아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폐지는 처음이지만 제정이 유예되거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담은 조항이 개정된다거나 하는 일이 이미 있어왔다. “충청남도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의가 있어 재의를 요구합니다.” 역사의 변곡점은 여기에 있다. 지난 26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충남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충남 인권조례는 아직 폐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은 걸핏하면 동성애, 에이즈, 이슬람을 들먹이며 먹잇감으로 삼았다. 그래도 된다는 신호를 정부와 국회는 십여 년 동안 보내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든 정부기구의 수장이든 국회의원이든 변명은 한결같았다. “(잘못된 줄은 알지만) 얼마나 극성인지 제가 어떻게 하기 어렵습니다.” 핑계가 학습되다 보니 괄호 안에 담고 입 밖에는 내지 않았던 판단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잘못된 줄도 모르게 될 지경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촛불항쟁이라 불린 시간을 거치고도, 차별금지법은 나중에 하자는 정부,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동성애를 찬성합니까?”와 같은 질문이 난무해도 속수무책인 국회를 겪어야 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장면이 제도적 절차에 등장하기까지 십여 년이 걸렸다. 인권조례 폐지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지자체의 기본권 보장 책무를 부정하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장 체계를 후퇴시키므로, 다시 논의해달라는 내용이 한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문서에 등장했다. 충남도지사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십여 년 만에 변곡점을 그리게 된 역사를 다시 써나갈 과제는 충남도만의 것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이다. 조례 폐지안 가결이 있은 뒤 충남도의회 의장이 자유한국당에 실망하며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충남도의 재의 요구는 도의회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편견과 혐오에 기댄 억지를 빤히 보면서도 존중하는 척 한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는 행태야말로 거짓 민주주의다.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향해 발걸음을 고쳐야 한다. 온라인 댓글과 문자폭탄과 수만명의 서명인 명부를 핑계 삼아 인권으로부터 한걸음씩 물러섰던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내세우며 사회적 토론을 봉쇄했던 역사와 단절해야 한다. 충남도의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다시 폐지를 의결할 수도 있다. 변곡점을 돌기 시작한 역사를 전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시민들은 행동하고 있다. 의견과 입장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며 신문광고를 내기 위해 후원 모금을 하고 있다. 평등을 바라는 시민들의 힘이 인권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제 제도정치가 자신의 역할을 찾아 행동에 나서야 한다. 충남 인권조례 폐지를 막는 것은 충남도만의 과제가 아니다.
칼럼 |
[시론] 충남 인권조례, 폐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 미류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폐지한다.” 달랑 한 줄짜리 조례 폐지안이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 2일 충남도의회 인권조례 폐지안 가결은 대한민국에서 최초, 아마도 전 세계를 통틀어 최초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변곡점은 폐지안 가결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십여 년간 지속되어온 혐오정치의 변이종에 가깝다. 보수 개신교 세력 일부가 주도하여 각종 법과 조례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문제 삼아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폐지는 처음이지만 제정이 유예되거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담은 조항이 개정된다거나 하는 일이 이미 있어왔다. “충청남도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의가 있어 재의를 요구합니다.” 역사의 변곡점은 여기에 있다. 지난 26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충남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충남 인권조례는 아직 폐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은 걸핏하면 동성애, 에이즈, 이슬람을 들먹이며 먹잇감으로 삼았다. 그래도 된다는 신호를 정부와 국회는 십여 년 동안 보내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든 정부기구의 수장이든 국회의원이든 변명은 한결같았다. “(잘못된 줄은 알지만) 얼마나 극성인지 제가 어떻게 하기 어렵습니다.” 핑계가 학습되다 보니 괄호 안에 담고 입 밖에는 내지 않았던 판단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잘못된 줄도 모르게 될 지경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촛불항쟁이라 불린 시간을 거치고도, 차별금지법은 나중에 하자는 정부,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동성애를 찬성합니까?”와 같은 질문이 난무해도 속수무책인 국회를 겪어야 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장면이 제도적 절차에 등장하기까지 십여 년이 걸렸다. 인권조례 폐지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지자체의 기본권 보장 책무를 부정하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장 체계를 후퇴시키므로, 다시 논의해달라는 내용이 한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문서에 등장했다. 충남도지사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십여 년 만에 변곡점을 그리게 된 역사를 다시 써나갈 과제는 충남도만의 것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이다. 조례 폐지안 가결이 있은 뒤 충남도의회 의장이 자유한국당에 실망하며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충남도의 재의 요구는 도의회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편견과 혐오에 기댄 억지를 빤히 보면서도 존중하는 척 한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는 행태야말로 거짓 민주주의다.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향해 발걸음을 고쳐야 한다. 온라인 댓글과 문자폭탄과 수만명의 서명인 명부를 핑계 삼아 인권으로부터 한걸음씩 물러섰던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내세우며 사회적 토론을 봉쇄했던 역사와 단절해야 한다. 충남도의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다시 폐지를 의결할 수도 있다. 변곡점을 돌기 시작한 역사를 전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시민들은 행동하고 있다. 의견과 입장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며 신문광고를 내기 위해 후원 모금을 하고 있다. 평등을 바라는 시민들의 힘이 인권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제 제도정치가 자신의 역할을 찾아 행동에 나서야 한다. 충남 인권조례 폐지를 막는 것은 충남도만의 과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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