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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9 18:02 수정 : 2018.03.19 19:04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서로 전자우편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한베평화재단의 구수정 이사가 올해 초 첫 대면에서 대뜸 3월11일에 50주기를 맞는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 위령제에 동행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위령제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참배하는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막상 다낭 근처 퐁니·퐁넛 마을에 도착해 위령비 앞에 서니 숨이 꽉 막혔다. 비문에 일련번호와 함께 망자들의 출생 연도가 새겨져 있었다. 1968, 1967, 1967, 1967, 1966, 1965, 1964, 1964, 1963, 1963, 1963, 1963, 1962, 1961, 1961, 1961, 1960, 1960, 1960, 1960, 1960, 1959….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학살은 1968년 2월12일에 벌어졌다. 나이를 역산할 것도 없다. 어린이들이다. 1959년생이라 해도 채 열살이 되지 않는다. 비문에는 이름도 당연히 새겨져 있었다.

안내자는 베트남의 여성은 이름 가운데 ‘티’(Thi)가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비문의 성인들 이름에는 대부분 ‘Thi’가 있었다. 희생자 74명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거나 어린이였다. 퐁니·퐁넛 마을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하미마을 희생자 135명도 그랬다. 태어나 부모로부터 이름도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우리가 찾아가는 마을마다 희생자들은 무장하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갓난아기부터 임산부까지 다 그렇게 죽었다. 학살 장소는 주로 방공호와 집 마당이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날의 생존자들은 아무리 전쟁 통이라 해도 왜 아이까지 다 죽였냐고, 아니 왜 나는 살려뒀냐고, 이 처참한 고통을 안겨주냐고 절규했다.

2박3일의 여행이었지만 내 인생에 이보다 더 길고 힘들고 아픈 여행은 없었다. 마음도 몸도 아팠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하미 위령제에서 엎드려 사죄했다. 일가족 아홉명을 희생당해 그 자리에 가족묘를 쓰고 담벼락에 남한의 군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라고 기록해둔 생존자 앞에서 용서를 빌었다. 함께 울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할 때가 되었다. 아니 늦어도 많이 늦었고 베트남 국민들이 참 오래 인내하며 기다려줬다. 어떤 증언자는 우리 일행에게 참전군인들은 왜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혹시 그 가족이라도 온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희생당한 자기네들이 이렇듯 비참하고 힘든데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른 그 사람들인들 또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겠냐고, 함께 위로하고 싶다고 할 때는 말문이 막혔다.

빌딩이 올라가고 국민소득이 늘어난다고 문명이 아니다. 문명은 반성과 성찰이 따라야 한다. 잘못한 것은 사과해야 한다. 참전군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오늘도 베트남에는 위령비가 새로 지어지고 있다. 지방정부가 나서 기록하고 역사유적지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녀상이 늘어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대한민국은 아베의 길을 갈 수 없다. 그것은 문명도, 지성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을 천명했다. 아세안과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 했다. 그 시작이 베트남에 대한 진실된 사과일 것이다. 지금이 바로 적기다. 문 대통령이 22일부터 시작되는 베트남 방문에서 생존자·희생자 유족들과 무릎을 맞대고 보듬어 위로해주시길 바란다. 평화의 상징, 촛불의 한가운데서 출범한 우리의 대통령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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