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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6 18:05 수정 : 2018.03.26 19:27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지난 19일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평택 삼성전자 공사현장에서 작업대가 무너져 1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2016년 말에도 이 현장에서 2명이 숨졌다. 추락방지망을 설치하지 않아서였다. 왜 세계 일류 삼성의 건설사가 값싼 안전시설에 인색해 망신당하고 있을까? 삼성만이 아니다. 2014~2016년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247명이 숨졌다. 대우가 20명으로 1위, 현대, 에스케이(SK), 지에스(GS), 롯데, 대림, 포스코, 금호 순이니 도급순위와 거의 일치한다. 요컨대 회사의 규모, 평판과 건설안전은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건설현장 사망원인 1위는 추락으로 56%다. 2016년 전 업종 사고사망자 969명 중 건설현장에서 51.5%인 499명이 죽었다. 1만명당 산재사망자 수는 0.96명으로 여전히 세계 최고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곱해 얻은 ‘소득수준 반영 산재사망률’은 더 기막히다. 2위 캐나다의 3배, 13위 영국의 26.3배다. 세계 최악의 산재사망에 그중 반이 건설현장에서, 또 그중 반이 떨어져 죽는다니 여기가 킬링필드가 아니면 뭔가. 산재사망의 55%가 가설구조물에서 일어난다. 지난 2일 엘시티 현장의 작업발판이나 안전그물망 같은 것이다. 직접공사비에 손대지 않고 수익을 높이려면 눈이 갈 곳은 소모비인 가설비용이다. 삼성건설이라 하여 수익 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건설의 그룹 내 매출 기여는 4.8%이고, 영업이익은 삼성전자의 100분의 1이다.

10대 건설사 중 그룹에 속하지 않은 곳은 대림산업 1곳, 건설이 모기업인 곳은 현대건설과 함께 2곳이다. 213년 된 시미즈를 비롯해 일본의 4대 건설사 오바야시구미, 가지마, 다이세이는 모두 건설로만 큰 회사다. 그룹 브랜드로 민간주택 시장을 지배하고 그룹 신용으로 개발사업 하는 나라도 우리뿐이다. 삼성의 사망자는 모두 협력업체 소속이다. 하청을 통해 수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보낸다. 죽음의 현장은 건설사가 ‘건설’은 안 하고 ‘개발과 관리’만 한 결과다.

밑은 더하다. 9인 이하 현장 재해율은 대형의 86배라는 통계도 있다. 건축주 직영인 소형현장은 사고 때 책임질 사람도 없다. 건설 전문 중견업체는 씨가 말랐다. 전체 0.65%인 상위 300개 업체의 매출 점유율은 42.9%이나 하위 62.4%는 고작 7.3%다. 일본은 상위 0.7% 업체 점유율이 35.3%인 반면 하위 57.9%가 20.7%나 된다. 건설 산재 사망률이 일본의 3.5배인 이유다.

이 악습은 대량생산이 절실했던 개발시대 느슨했던 규제의 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79개 기초파일 중 50개만 박아 ‘피사의 빌라’로 불렸던 2014년 충남 아산 오피스텔은 건축주가 건설업면허를 대여해 벌인 일이다. 현행법으로는 인명사고가 나야만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이 가능하다. 부실을 처벌 못하니 부실건축이 예방되지 않는다. 가연성 외장재 금지법안은 2009년부터 추진되었으나 저렴한 도시생활주택을 장려하던 국토부 반대로 무산되었고 2015년 의정부, 지난해 제천 사고로 이어졌다. 밀양 세종병원 또한 약소한 이행강제금 덕에 배짱영업을 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산재사망률인 영국은 건설 사망사고가 10년 전의 반으로 줄었음에도 관련 기소 건수는 오히려 늘었다. 우리는 거꾸로 줄었다. 더구나 영국은 2007년 제정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으로 사업주의 책임을 엄히 묻는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책무라면 국가는 목숨을 가벼이 여김을 적대행위로 취급해야 한다. 건설, 건물 사고는 원전이나 우주선 같은 고위험 사고도 아니다. 세계 최고층을 지으면 뭐 하나 삼성. 푼돈 아끼지 말고 23살 청년의 추락사부터 막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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