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6 16:29
수정 : 2019.05.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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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변호사시험이 시행된 2016년 1월 서울 중앙대학교 시험실 모습.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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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변호사시험의 합격자가 발표됐다. 이번 시험에서는 응시자의 50.78%가 합격해 1691명의 신규 법조인이 배출됐다. ‘한국식 로스쿨’인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지 11년이 지나면서 변호사시험을 둘러싸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응시자 수는 2배로 늘었으나 합격률이 87.15%에서 50.78%로 떨어졌다. 그 결과 로스쿨은 현재 신음하고 있다. 합격률이 정상적인 법학교육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수를 결정할 때에는 여러 요인이 고려돼야 한다. 변호사 수, 법률시장의 상황은 물론 로스쿨이 도입된 취지와 법조인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의 운영 상황, 무엇보다 법률서비스 이용자인 국민의 서비스 접근 용이성과 만족도가 고려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민을 중심에 두고, 적정한 변호사 수와 그에 따른 신규 변호사 배출 인원수가 제대로 연구된 적은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로스쿨 도입의 출발점은 황폐화된 법학교육과 ‘고시낭인’을 양산하던 과거의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제’를 버리고 ‘교육을 통한 법조인의 양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데에 있다. 국민들은 반세기 넘게 지속돼왔던 정원제 사법시험에 익숙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법시험이 가장 공정한 시험이며 개천에서 용도 만들어낸다는 일종의 환상이 있다. 그러나 선발시험이던 사법시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충실한 전문 법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 로스쿨이었다. 국제화·전문화 시대에 고시촌에서 법서만 달달 외워 소년급제하던 시스템을 배격하고, 법치주의를 좀먹던 전관예우와 법조인들만의 엘리트주의 및 기수문화를 일소하며, 집집마다 법률 홈닥터를 두고 무변촌이 없도록 국민의 법률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로스쿨 도입의 취지였다. 법률가의 지역 간 균형, 사회적 약자의 법조인 진출 확대 등도 내포돼 있었다.
변호사시험법은 이러한 로스쿨 도입의 취지를 고려해 시험 합격자 수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합격률이 5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합격자 수를 늘리자는 것은 법에 규정된 로스쿨의 도입 취지를 되찾자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일각에서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대로 변호사시험을 완전 자격시험으로 보아 의사국시(국가시험)처럼 합격률이 90%를 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변호사협회 쪽에서는 법률시장이 포화상태이므로 적정 수입은커녕 실업자로 내몰릴 청년 변호사의 양산을 막기 위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줄이자고 한다.
미국처럼 완전 자격시험으로 보아 합격자 수를 제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이상적으로는 타당하나, 대학에서 변시 시험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법학 적성이 부족한 학생들이 있으며, 법학교육을 충실하게 이수했다고 볼 수 없는 답안지들이 있다. 반면 법률시장의 포화와 질 낮은 변호사의 양산을 이유로 한 변호사업계의 합격률 통제 주장에는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왜 국민들이 낮은 수임료로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이익을 희생하면서 변호사의 적정 수익을 보장해야 하는가? 어느 직역에서도 소득보전을 이유로 한 신규 진입규제책을 쓰지는 않는다. 변호사도 실력이 모자라면 도태되는 것이 순리이다. 또한 변호사의 질적 저하는 누가 어떻게 검증했는가? 구체적 근거 없는 자질저하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50%의 합격률이 지속된다면 이미 용도폐기된 사법시험 시절로 회귀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로스쿨은 이미 시험 합격을 위해 ‘학원 대체불가의 법학교육을 하는 학원’이 되어 버렸다. 이대로면 법조 기득권층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린 로스쿨의 성과도 빛바랠 날이 머지않았다.
적정 변호사 수를 예측하여 새로 배출될 변호사 수를 추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수를 정하면서 국민의 시각에서 종합적 검토를 거친 연구는 없었다. 법무부는 이제야 장기적으로 합격자 결정 기준을 연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변시 학원으로 변질된 로스쿨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납득 가능한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 실기하면 로스쿨 교육이 붕괴됨은 물론 암울했던 과거로의 회귀가 현실이 될지 모른다.
이승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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