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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8 17:21 수정 : 2019.10.29 15:01

변성호

해직교사·전 전교조 위원장

6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부당하게 법 밖으로 내몰렸다. 6만명 조합원 가운데 단지 9명의 해고자가 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였다. 정부도 전교조를 법 밖으로 내모는 행위가 헌법과 국제기준에 반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이 내세운 유일한 법적 근거는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이었다. 이는 군사독재 시절 노동조합을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만든 악법에서 유래한 것이어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삭제할 것을 권고한 조항이었다. 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3년 차관이었던 당시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관련 조항이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있어서 근거 규정 자체가 약하고 자칫 위헌 소지가 크다’라는 취지의 부정적인 입장을 실토한 바 있다. 그러나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국정 농단 세력이 아니었던가! 박근혜 정부의 고용부는 그해 10월24일 기어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달랑 팩스 공문 한장으로 유린한 것이다.

잔인한 3년의 세월이 흐르고 촛불이 광화문을 메웠다.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기대감이 시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촛불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전교조가 법외노조라면 말이다.

국내는 물론 주요 국제기구들이 한국의 노동 탄압을 우려하며 수차례 시정을 권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우리나라도 1991년에 가입한 대표적인 국제기구다. 그러나 우리는 182개 회원국 가운데 핵심협약을 온전히 비준하지 않은 6개국에 속한다. ‘노동 후진국’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꼬리표만큼이나 노동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라는 나라 안팎의 정당한 요구가 있어서였을까? 지난달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3개의 핵심협약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그중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조처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근로자 단체 및 사용자 단체는 행정당국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정부가 이런 의지를 표명한 만큼, 비준안의 국회 통과 이전에 행정부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조처를 먼저 이행해야 한다. 지난해 정부 산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즉시 직권 취소’와 문제가 된 ‘시행령의 삭제를 통한 취소’로써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가 행한 행정처분, 즉 ‘노조 아님 통보’를 정부 스스로 취소할 수 있으며, 직권으로 취소하라는 해법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권고를 아직 이행하지 않았고 법외노조 적폐 청산의 시계는 멈춰 있다. ‘대법원 판단을 기다려 보겠다’는 핑계는 참으로 군색하다. 사법부에 미룰 일이 아니다. ‘법 개정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말도 꼼수에 불과하다. 갈수록 가관인 것이, 최근 정부는 아이엘오 협약에 정면으로 반하며 노동기본권을 더욱 옥죄는 ‘노동 개악 법안’을 줄줄이 발의했다. 친자본으로 기울어진 정부의 노동정책은 조삼모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으며 거대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부당한 법외노조 통보로 피해를 감내해야 했던 세월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588일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900일을 넘어서고 있다. 노동자의 삶과 권리는 안중에 없던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를 ‘한 마리 해충’에 비유하며 극도의 노동 적대와 전교조 혐오를 여과 없이 내비쳤었다. ‘노동 존중’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시절과 달라야 하지 않는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했다. 정부가 궤변을 앞세워 이율배반의 행보를 취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교조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있으며, 조합원들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법외노조 처분 이후 교단을 떠나야만 했던 34명의 해고자는 사랑하는 학생들과 다시 함께할 날을 손꼽으며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있다.

햇살 고운 가을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오늘도 거리에서,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햇살 한줌 평화롭게 누리는 삶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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