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29 19:10
수정 : 2013.08.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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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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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시를 동서로 가르는 네레트바강에는 스타리 모스트(옛다리란 뜻)란 이름의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가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다리 이름에는 ‘새’란 접두어가 붙는다. 1566년 이래 모스타르의 상징이 됐던 원래의 다리는 보스니아내전으로 파괴되고 지금의 다리는 2005년에 복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새 스타리 모스트의 낡은 대리석 바닥이나, 다리 난간 위에서 다이빙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20년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옛다리’와 ‘새 옛다리’ 사이엔 메우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다리를 덮고 있던 400년 묵은 이끼가 사라진 때문이 아니라 20년 세월의 더께 속에서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 때문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체가 그렇듯이 모스타르에서도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및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들이 강을 사이에 두고 오순도순 살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를 이어줘 온 옛다리는 이 지역 사람들의 관용과 단결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유고연방의 일원이던 세르비아공화국의 지도자 밀로셰비치가 집권 연장을 위해 공산주의 대신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선동에 나서자 상황은 돌변했다. 크로아티아를 필두로 유고연방 구성국들이 차례로 독립을 선언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역시 92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지만 민족주의 광풍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해온 민족들도 미치게 만들었다. 세르비아계가 독립에 반대하며 세르비아공화국과 합치겠다고 나섰고 크로아티아계는 크로아티아에 합류하려 했으며 이슬람계는 분열을 거부했다. 내전이 발발했고,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각각 보스니아 안의 자민족 민병대를 지원하면서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3년 이상 계속된 전쟁은 나토의 개입과 미국의 중재로 95년 12월 간신히 끝이 났지만 2차대전 이래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됐다. 최소한 1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지고, 2만~5만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정든 고향을 등진 사람들도 220만명에 이른다. 전쟁 전 460만명에 이르던 인구는 현재 38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왜 싸운 것인가? 모스타르 관광안내원 레질라는 “그렇게 싸웠지만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가 공존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전쟁은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고 단언한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모스타르까지 안내한 루치야나도 이 지역 젊은이들은 종교 갈등엔 관심 없다며 왜 종교나 민족이 다르다고 싸워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전쟁과 분열로 갈라져 한때 한 나라였던 두브로브니크에서 모스타르로 오는데 국경을 세 번이나 넘고 마지막 국경을 통과하는 데만 40분 이상 걸리게 된 지금의 상황이 우스꽝스럽다는 거였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선동에 휘둘리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민중들이 비로소 각성한 것인가.
옛다리 인근 기념관에서 옛다리의 파괴에서 복원까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발칸의 화약고라 불린 이 지역과 마찬가지로 열강의 이해가 맞닿아 있는 또 하나의 갈등의 현장 한반도를 떠올리면서 부끄러웠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쨌거나 전쟁을 끝냈고 옛다리를 복원하며 유대인을 위한 시나고그 건축을 허용하는 등 과거 그들의 관용과 단결의 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한반도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에서 말했듯이 “전쟁이 잠시 멈춘 세계 최장의 휴전기간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불안한 휴전상황을 항구적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이 남북 위정자들의 가장 시급한 과제일진대, 남북 지도자들은 태연하기만 하다. 말로는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와 희망의 시대를 열자”면서도 북은 북대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나 벌이고, 남은 남대로 샅바싸움에 매달리고 있다. 세계 최장의 휴전이란 기록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 아니라 치욕이다. 서둘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이 치욕을 끝내야 한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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