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1 18:43
수정 : 2006.04.15 21:49
힙합은 원래 다국적이며, 좌파적이다. 힙합은 미국에서 인종 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하위문화에서 출발했다. 이런 저항문화가 최근 독일 힙합에선 극우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기이한 변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플레어라는 이름의 가수가 낸 음반 ‘신독일 물결’(사진)은 표지부터가 극우 민족주의적이다. 옛 독일식 글자체와 독일제국의 상징인 독수리문양이 음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1976~1983년 독일에서 자생한 언더그라운드 펑크락과 뉴웨이브 음악 등 실험적 독일 음악들을 일컫는 ‘신독일 물결’을 음반 제목으로 사용한 것도 매우 반어적이다. 음악 스타일은 전혀 독일적이지 않으면서, 내용은 독일적인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에서 나오는 힙합 음악은 하층민들을 겨냥하고 있다. 노래의 배경은 고층 아파트가 몰려 있고, 대부분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베를린의 ‘게토’다. 가사는 폭력, 과시, 파괴, 섹스 등을 주제로 하면서, 비속어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이나 동성애자를 비하하고, 외국인에 대해선 적대적이다. “터키인은 점점 부유해지고 독일인들은 점점 가난해진다네”라는 가사도 있다. 힙합과 극우의 만남이다.
독일 팝음악의 극우적 흐름은 90년대 중반 프로그레시브 메탈 음악가수인 람슈타인, 비트 등의 가사에 게르만민족의 상징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또 2년 전 유행했던 <우리는 우리>라는 노래는 독일 전후세대의 행적을 기리며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불어넣는 내용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민족의식을 운운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독일에서 이런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54년 서독의 월드컵 우승을 다룬 <베른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독일 국기의 상징인 흑·적·황색의 옷이 유행하는 것도 민족 정체성을 갈망하는 독일인들의 심리 변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를 우려·경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9~22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팝 음악 박람회에서 만난 음악 제작자와 음악인, 팬 등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음악 시장의 극우적 흐름을 경고하는 내용이 담긴 음반을 제작하기로 했다. 이 음반의 제목은 ‘독일에선 쉴 수가 없어요(I can't relax in Deutschland)’이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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