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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지지하며 한신대 교수단 전원이 삭발 시위를 감행했다. 오른쪽부터 김정준, 김이곤, 박근원, 안병무 교수. <한신대 50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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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떠돌이 목자의 노래 5-6
1972년 10월17일 대통령 박정희는 기어코 전국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른바 유신독재의 시작이었다. 대학 휴교령과 학생 제적, 강제 징집, 서클 해체 등으로 학생운동은 꽁꽁 얼어붙었다. 1년 가까운 침묵 끝에 73년 10월2일 서울대 문리대에서 첫 유신철폐 데모가 터졌다. 한신대에서도 학생회장 이창식과 대의원 의장 김성환이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신앙 양심상 안이하게 수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선언한 뒤, 학생들이 11월9일부터 열흘 동안 동맹휴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채플실에서 예배와 토론으로 신앙적인 결단과 함께 투쟁을 하기 위한 이론적인 무장을 계속했다. 우리 교수들도 강의를 할 수가 없으니 날마다 교수 회의실에 모여서 아침 기도회를 열고는 덕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며칠 뒤 11월15일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학장실로 갔더니 김정준 학장이 커튼을 내린 채 머리를 삭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늘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있었기에 이발기계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하얀 길이 생겨났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모두 화계사로 출가라도 하려는 건가요?” 하고 물었다. 알고 보니 안병무 교수의 제안으로 교수단 전원이 삭발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안 교수의 삭발이 끝나자 나도 주저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장발이었던 내 머리가 싹둑 잘려 나갔다. 거울 앞에 선 나는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안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동환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거울 속에서 은진중학교 시절의 내 모습을 보았던 것이었다. 나도 “병무야!” 맞장구를 쳤다. 그 엄중한 순간에 교수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10여명의 교수들이 머리를 자르고 나오자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마침 학교 근처 이발관이 쉬는 날이어서 성격이 급한 학생들은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예비 목회자들의 배움터인 수유리 캠퍼스에 때아닌 스님이 수십명씩 모여든 형국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며칠 뒤 함석헌 선생이 격려차 방문했다. 선생은 머리를 삭발하는 대신 길게 길렀던 하얀 수염을 잘라 우리와 뜻을 같이했다. 장난기가 있었던 김정준 학장은 자른 머리카락으로 붓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고 했다. 김경재 교수는 학장실에서 자르지 못하고 나중에 이발관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이발사가 “고시공부 하러 가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교수들에게 그날의 삭발은 참회와 아픔과 자책과 고뇌의 한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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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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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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