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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8 19:02 수정 : 2008.10.28 19:02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18

전쟁, 그 죽음의 불길을 다투어 비키는 그 북새에도 총을 들이대고 그것도 속옷을 뺏는 어처구니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남쪽에선 미국 군대 북쪽에선 중국 군대가 서로 밀고 밀리고 그럴 적이다. 그때를 아마도 ‘1·4 물러서기’ 그러기도 했다.

불길을 비키는 사람들(피난민)은 눈 위로 기어가는 개미떼나 다름없었다. 가봤자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도 모르고 기어가는 개미떼. 평택을 좀 지나서였을 게다. 정거장 뒤켠에서 서성거리는데 누가 오란다. 가보니 내가 입고 있던 털 윗도리 속옷을 벗으란다. 눈보라와 함께 밤은 내리지, 쌩쌩 춥지, 목도리도 없고 덮개도 없는데 속옷까지 벗으라면 나보고 얼어 죽으라는 거 아니냐고 해도 멨던 총을 ‘앞으로 총’ 한다. 하는 수 없이 벗었더니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학생의 윗도리를 벗기고 내 털 속옷을 입히고선 고맙다고 간다. 제 속옷은 군인 것이라 여학생한테 입히기엔 멋쩍었나 보았다.

거기서 나는 용케도 군용차를 얻어 타고 보은으로 빠지게 되었다. 멀리서 대포소리 기관총소리 꾸릉꾸릉 따따땅, 그럴수록 디리 밟는데 앞을 가던 미군 차 한 대가 틀거져(고장) 서 버린다. 길은 외길이라 앞뒤로는 차들이 까마득히 늘어섰다.

달릴 때는 그래도 찬바람이 볼을 때렸지만 멈춰서니 맵고 찬 것이 뱃속까지 얼쿠었다. 그래 그런지 함께 타고 있던 군인 몇과 아주머니, 아저씨는 아예 고개를 밑으로 숙이고는 꿈적도 않고 있다.

이때다. 틀거진 앞차에서 미군 몇이 뛰어내리자마자 길가 이응집(초가집)에 불을 지르고선 좋다고 낄낄 불을 쬐고 있다. 홰에 앉았던 닭들이 꼬꼬댁 날뛰고, 집에 있던 할머니가 “어떤 놈이 우리 집에 불을 지르냐.” 소리소리 질러도 모르는 체 불만 쬐고 있는 미군들. 울컥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나는 펄쩍 뛰어내리며 그대로 받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미군이 너무나 커서 등때기도 못 받고 엉덩이쯤 받았나보았다. 비칠 했다가 돌다서며 총을 제까닥 “저주받을 놈의 새끼, 쏘겠다”고 으른다. 내가 “뭐, 이 새끼야” 그러려는데 내 뒤에서 “손들어, 이 새끼들아” 그런다. 겨냥은 미군들이었다. 미군들이 어벙벙하자, 총부리를 앞으로 쿡쿡 대면서 “손들어, 안 들어?” 그러니 그때서야 총을 놓고선 저희들 차로 올라간다.

이어서 나한테도 손들고 차에 타란다. 나는 대뜸 “못 탄다, 불을 끄고 가겠다”고 하자. “안 타? 쏜다, 전쟁은 총부터 쏘고 나서 말을 하는 것도 몰라? 어서 타” 그런다.

하는 수 없이 올라타는데 할머니는 목 놓아 울고 불길은 훨훨 이어 붙고, 나보고 차에 타라고 하던 그 젊은이는 내가 타고 온 차를 모는 일등병이었다.


마침 틀거졌던 앞차를 고쳤는지 내달린다. 우리가 탄 차도 눈보라를 가르며 달리는데 그 운전병이 휘파람을 불다 말고 나한테 말을 건다.

백기완
“너 임마, 그 뚤커(용기)는 좋아, 하지만 좀 두었다 써 임마. 이참 이 땅은 온통 불바다야, 저 집만 타는 줄 알아? 잘못하면 죽을 뻔했잖아. 아무튼 살아남아 이 새끼야, 남아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이 다음 소설로 쓰면 되잖아.” 다시 휘파람을 불지만 눈물범벅이다. 나도 흘리는데 그 휘파람은 이런 노래인 것 같았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에 바친 목숨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조국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이 나라에 단군의 자손.’

부르고 또 부르다가 부산에서 헤어져야만 했다. 달구름(세월)이 여러 해 흐른 뒤였다. 언젠가 보은을 거쳐 대구 어느 대학에 말을 해 주러 갔을 적이다.

애들이 물어왔다. “선생님, 우리 겨레가 정말 한 핏줄입니까?” “아니지, 어떤 겨레든 피가 하나라고 하면 안 되고 다만 제국주의 침략, 그리고 그 뺏어대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 그 랑이(민중)는 하나다, 그렇게 말을 해야지.”

그러다가 문득 내가 열여덟 살 적 어느 일등병한테 익힌 노래 ‘달도 하나 해도 하나’가 떠올라 물었다.

“여러분! 얼추(혹) 아버지가 6·25 전쟁 때 남의 집에 불을 지르고선 낄낄대는 미군을 들이받다가 죽게 된 어느 애를 살려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 있소? 있다고 하면 그 분이 있는 데를 좀 알으켜 주시오.” 이야기가 서름겨웠든지 비칠하자 학생들이 부추겨줄 때 나는 혼자 웅얼거렸다. ‘살아만 있다면 쐬주 한 모금 같이하고 싶은데 살아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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