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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1 18:52 수정 : 2008.11.11 22:18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28

‘저치(장가)간다’고 우쭐대던 1957년, 나는 세술씩이나 죽을 뻔했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으로 씨갈이꺼리(농민운동)를 가서 보름 동안 무지 일을 했다. 몰라보게 새시깜해진 채 서울로 올라오던 늦은 한낮, 백이 넘던 우리 떼거리는 넘실대는 바닷가에 모였다. 어떤 녀석은 입은 채로 ‘아리아리’ 바다에 뛰어들고, 하늘과 바다는 누가 더 새파란가를 다투고, 여기에 술만 더하면 세 떵딱(장단)이 딱 맞아떨어질 터인데 물살이 뜨저구니(심술)를 부린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천 사람의 하얗게 바랜 뼈가 몰개(파도)에 철썩철썩 부대끼고 있다. 놀라 이장한테 달려가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6·25전쟁 때 이쪽저쪽에서 죽은 사람들이란다. 하지만 치워도 닦달을 받아 차라리 그냥 내버려둔다고 한다.

사람 사는 데서 이럴 수가 있는가. 우리들은 모래로 올리게(상)를 만들고 그 위에 뼈다귀를 쌓은 다음 두 무릎을 꿇고 막술을 올렸다. 울컥하는 것을 겨우 삼키며 그 뼈다귀들을 다시 바다에 던졌다. 바다를 무덤으로 고이 누우시라고. 숨이 막혔다. 그래서 다시 그 안타까운 뼈다귀를 찾는다며 거센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넋살을 잃고 말았다.

꼭 죽는 건데 애들이 살려냈다. 그런데도 또다시 뛰어들었다가 깨어보니 캄캄한 밤, 별빛 아래 살아 있는 내가 그렇게도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살아 있다고 사는 거냐?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나는 명동 뒷골목에서 미친 듯 울부짖었다. 모든 시, 모든 소설, 모든 그림, 모든 굿, 모든 노래, 모든 찬굿(영화)은 모두 바다에 처넣어야 한다. 이어서 사람이라는 것들도 몽땅 바다에 처넣어 스스로를 건지게 해야 한다. 그에 앞서 ‘달거지’ 찬굿을 하나 꾸미자고 아무리 외친들 미념(소용)이 있으랴.

외톨이가 돼 술집 앞을 서성이는데 달리던 차가 홱하고 빗물을 들씌운다. 약이 오른 나는 차를 뒤쫓으며 소릴 질렀다. “서, 이 새끼야 안 서?” 그러다가 갑자기 멎는 바람에 자동차 뒤에 부딪쳐 쓰러진 것 같은데 내 옆구리를 누가 쿵하고 내지른다.

깨어보니 그 자동차를 모는 녀석이 죽어라고 나를 차며 웅크른다. “나는 이 새끼야, 경무대(청와대) 경호원이야, 너 같은 새낄 죽이는 경호원.” 나는 매우 가라앉은 목소리로 “야, 그러질 말고 나하고 한술 붙는 게 어때?” 그러는데 “좋지” 그러면서 달겨드는 것을 그대로 받으니 ‘퍽’ 그냥 놔두면 아주 죽을세라, 사람 다니는 길에 끌어다 놓고 웅얼댔다. “올해는 두술씩이나 죽을 뻔했구나.”

세술째로는 빼대기(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이야기다. 그때 우리는 원효로4가 흙더미보다도 더 못한 데서 아버지, 애루(동생) 인순이, 나, 이렇게 셋이 살았다. 따라서 집은 사람을 데려올 데가 못 되었다. 하지만 으스렁 달밤, 광화문에서부터 걸어 원효로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길가에 스물대는 나무가 그리 좋았다.


백기완
그래서 흥얼거리며 가는데 골목에서 누군가가 불쑥, 내놓으란다. “뭘?” “이 새끼야, 있는 대로 내놔.” “야, 빼대기를 해 처먹어도 빼대기 나라의 언니는 알아 모셔야지, 돈에 멀어 새까만 언니도 못 알아보는구나. 따라와 임마, 많은 돈은 없지만 몇 푼은 줄 터이니.”

내 말이 워낙 그럴싸했던지 녀석이 따라온다. 가마니때기를 들치며 들어오라고 하니 놀라 쭈빗댄다. 이때다 하고 녀석의 칼보다 더 큰 것을 들이댔다. 두 손을 번쩍 든다.

“손만 들면 되냐, 있는 대로 다 내놓고 가 임마, 어서.” 얌전히 따라한다. 나는 빙그레 도루 주며 “올해 끝가서(말) 내가 저치를 가거든, 장가 말이야, 거기나 와.” 그러면서 등을 미는데 느닷없이 칼을 들이댄다. “어? 마지막 꾸벙(인사)을 하고서야 가겠다 그 말이가?” 그러는데 칼을 접더니 그대로 간다.

그 빼대기 녀석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잔치엘 왔기로 귀에 대고 말했다. “오늘도 칼을 갖고 왔냐?” 빙그레 웃기에 나는 말했다. “이다음 네가 저치 가려고 할 적엔 말이다, 그땐 색시한테는 칼을 대지 마 임마, 그러면 색시란 누구든 달아나는 거야. 그러면 무엇을 대느냐, 몸과 마음을 한꺼술에 그대로 들이대는 거야 임마, 알겠어. 아무튼 날 살려 저치를 가게 해주어 고마워.” 모처럼 나도 웃고 그 빼대기도 웃었는데 그 젊은이는 요즈음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 같은 손이나 만나곤 했으면 굶어죽었을 텐데….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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