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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4월 억울한 ‘살인 혐의’로 기소된 재일 한국인 이득현씨를 변호하다가 명예훼손으로 피고인이 된 일본인 변호사 마사키 히로시에 대한 2심 공판을 참관하고자 필자와 문인구(오른쪽) 변호사가 김포공항에서 도쿄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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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16
1968년 2월, 일본에서 감동적인 뉴스가 서울로 날아들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는 재일 한국인을 자진 변호하던 일본인 변호사가 도리어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에 그렇게 훌륭한 변호사가 일본에 있단 말인가? 그에 반해서 재일 한국인 변호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55년 5월11일 밤에서 다음날 새벽 사이에 일본 시즈오카현 미시마시에 있는 마루쇼(丸正)운송점에서 그 주인인 여성이 목졸려 죽임을 당했다.(그래서 ‘마루쇼 사건’이라고 한다.) 그 사건의 용의자로 트럭 운전기사인 한국인 이득현씨와 일본인 조수 스즈키가 강도살인죄로 체포 기소되었다. 두 사람의 범행 부인에도 불구하고 상고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씨는 무기징역, 스즈키는 징역 15년이었다. 이때 일본인 변호사 두 사람(마사키 히로시, 스즈키 주고)은, 진범은 이씨 등이 아니라 피해자의 친척 세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고 <고발>이라는 책까지 써서 출판하는 한편, 기자회견 등을 통하여 그들의 이름을 공개했다. 예상대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두 변호사는 법정에 피고인의 몸으로 서게 되었고,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득현씨의 딱한 사정과 일본인 변호사 두 분의 헌신에 감동한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이득현 사건 후원회’를 만들었다. 변호사, 문인, 교수, 시민운동가 등이 참여한 그 후원회(회장 계창업 변호사)는 시화전 등으로 모금활동을 벌이는 한편, 언론과 뉴스레터 ‘이득현 사건 후원회보’를 통해서 홍보전도 벌였다. 나는 <신동아>에 <이득현 사건 유죄의 의문점>이라는 제목(부제 ‘마루쇼 사건, 재심의 여지 있다’)의 글을 기고하였다. 위의 두 일본인 변호사가 이씨 등의 원죄(怨罪)를 밝히기 위해 쓴 <고발>이라는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역자 유근주) 펴냈다. 그리고 나는 문인구 변호사와 함께 4월3일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에 내린 우리는 마사키 변호사를 자택으로 찾아갔다. 그는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으며, 우리는 서재로 안내되었다. 우리는 한국 국민과 이득현 사건 후원회원들이 전하는 감사의 말씀을 드린 뒤, “이처럼 한국인 이득현씨를 위해서 싸워주시고, 또 온갖 고난을 겪으시다니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라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는 이득현이라는 한국인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양심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그날 오후, 두 변호사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의 항소심 공판이 열리는 도쿄 고등재판소 법정으로 갔다. 그날은 마사키 변호사가 운송점 여주인 살해사건의 진범으로 지목한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자신이 직접 신문하는 날이었다. 현장 약도까지 보여주며 집요하게 추궁하는 장면에서는 누가 피고인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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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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