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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31 18:34 수정 : 2012.01.31 21:50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40

1987년 5월27일 재야 민주단체들은 ‘박종철군 국민추도위원회’를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로 확대하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했다. 이날 각계 인사 150여명은 저마다 기관원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서울 을지로 향린교회에서 발기인대회 및 결성대회를 개최했다. 6월항쟁을 이끌어갈 ‘국본’이 탄생한 것이다.

국본은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범국민대회’(6·10 국민대회)를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가 열리는 6월10일로 맞추었다. 그날은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날이었고, 일제 강점기 6·10 만세운동이 벌어진 날이었다.

국본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운동가요 대신 ‘애국가’를 부르기로 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민주’로 개사해 부르기로 했다. 슬로건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행동하는 국민 속에 박종철은 부활한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등으로 정했다.

정부는 매일 오후 6시에 틀어주던 애국가 옥외방송을 금지했고, 대회 며칠 전부터 택시와 버스 회사를 통해 경음기를 차량에서 떼어내도록 했다. 차량 경적 시위를 막기 위해서였다.

6·10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9일, 박정기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었다. 아들에 이어 또 한 명의 젊은 학생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천지가 또 한번 무너지는구나 하는 심정이었지. 정말 말이 안 나오드라.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이한열군 부모를 만나러 병원에 찾아가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연세대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활동하던 이한열은 6월9일 오후 ‘구출학우 환영 및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총궐기대회’에 참여했다.

그는 1000여명의 학생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며 연세대 교문 쪽으로 행진했다. 교문 앞에 다다르자 전경과 백골단이 가로막고 도열해 있었다. 이한열은 시위대의 선두에 서 있었다. 대치상태는 곧 허물어졌다. 최루탄이 난사되었고 전경과 시위대 사이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교내로 후퇴하는 순간 이한열이 ‘SY44’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그를 부축하고 인근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한열은 고통에 신음하며 내뱉었다.


“내일 시청에 가야 하는데….”

그는 병원에 실려가는 상황에서도 ‘박종철 고문살인 규탄집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의 사진기자 정태원은 피흘리며 쓰러진 이한열을 친구가 부축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중앙일보>와 <뉴욕 타임스> 1면에 실렸고 전세계에 보도되었다. 화가 최병수는 사진을 토대로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대형 걸개그림을 그려 연세대 학생회관에 내걸었다.

며칠 뒤 박정기는 기차를 타고 홀로 상경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그는 학생들의 안내를 받아 병원 앞 잔디밭에 있는 이한열의 아버지 이병섭을 찾았다. 박정기가 먼저 인사를 했다.

“내는 박종철의 애비 되는 사람입니더.”

위로가 되고 싶어 찾아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하다 겨우 입을 떼었다.

“아들이 곧 회복돼서 일어날 낍니다.”

박정기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담배를 입에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담배를 피우며 두 사람은 무언의 말을 주고받았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날 훗날 유가협을 함께 이끌어갈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현 유가협 회장)은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꼭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이한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6월10일 아침부터 학생과 시민들은 시청·종로·을지로 등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사흘 전부터 대회 장소인 성공회대성당 건물 주변을 에워쌌고, 11개의 지하철역을 폐쇄해 시민들의 참여를 막았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정오가 되자 잠실체육관에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정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민정당은 이날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박정기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함께 손을 치켜드는 방송 화면을 보며 아들과 이한열을 떠올렸다. 거의 같은 시각, 성공회대성당에서 42번의 종소리가 울렸다. 분단체제 42년을 상징하는 횟수였다.

국민대회 시작 시간인 오후 6시가 되자 서울의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에서 경적소리가 일시에 들려왔다. 곧이어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서머타임제가 적용되고 있어서 사위는 대낮처럼 환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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