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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12일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 수도원의 마당에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창립 1돌 기념 현판식이 열렸다. 초대 회장 이소선 어머니(맨 앞 등진 이)를 비롯해 박형규 목사, 박용길 장로, 제정구 전 의원 등의 모습이 보인다. 박정기씨는 이날 함께 열린 정기총회에 처음 참석해 유가협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작가 박용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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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47
1987년 8월12일. 박정기는 서울 합정동에 있는 마리스타 수도원을 찾아갔다. 비바람이 치던 날이었다. 그곳엔 유가협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과 김세진·이재호·박종만·송광영·김종태·이경환 열사 등의 유가족들이었다. 박정기와 유가협의 첫 공식 만남이었다. 그 전까지는 왠지 다른 유가족들과의 만남이 조심스러워 내심 경계를 해온 터였다. 이들은 군사정권 시절 직격탄과 쇠파이프에 맞아죽고, 고문에 의해 살해되고, 정부 기관원들에 의해 끌려갔다 시체로 발견되거나 스스로 몸을 불사른 이들의 가족들이었다.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는 유가협 1돌을 맞아 정기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유가협의 간사장인 일월서각 대표 김승균과 사무국장 조인식, 그리고 민가협의 회원들과 민통련 등 재야의 민주화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유가족들은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다. 회장 후보로 이소선과 김세진의 아버지 김재훈이 5 대 5로 동수였다. 유가족들은 이날 처음 참석한 박정기에게 마지막 한 표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정기가 말했다. “내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았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이 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태일평전>이란 책을 읽어봤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소선씨를 추천합니다.” 그의 추천으로 창립 회장인 이소선 어머니가 재선출되었다. 박정기의 유가협 활동은 88년 1월14일 박종철 1주기 추도식 이후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유가협은 86년 8월12일 창립했다. 초기 회원은 11명이었다. 처음 명칭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였다. 훗날 부산·광주 등에 지회가 생기면서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로 바뀌었고, 그 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 가입하면서 전국민주주의민족통일유가족협의회가 됐다. 지금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다. 유가협은 이소선이라는 발원지에서 유래되었다. 이소선은 아들 전태일을 잃은 뒤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이끌었다. 어머니는 누군가 공권력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맨 먼저 병원을 찾아갔다. 그 시절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주검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박영진 열사가 분신했을 때는 보안 당국이 주검을 빼앗아 강제로 화장시켰다. 기관원들은 시국 사건이 터지거나 예견될 때면 유가족과 이소선부터 갈라놓았다.이소선은 유가협을 창립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은 정부 말밲에 들을 수가 없어요. 청계 식구들하고 재야 인사들하고 가서 보면 정부에서 다 손을 써놨어요. 저 여자(이소선)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빨갱이가 되어 죽었다고. 대화하면 안된다고. 가족들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 ‘아이고, 야 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해갖고 공부를 시킸는데 겨우 빨갱이 하라꼬 너그 공부시켰나? 이노무 새끼야 잘 디졌다. 빨갱이 할 밲기야 잘 디졌다.’ 그래서 내가 가족을 설득을 시키볼라 카는데 이래 말해요. ‘니가 빨갱이 오야붕이라서 죽었는데 너하고 무슨 말 하노?’” 유가족들은 이소선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차츰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유가족이 늘어갔다. 대학시절 박종철이 방황을 마치는 계기가 되었던 박종만 열사의 부인 조인식이 이소선과 함께했고, 김세진·이재호·송광영·김종태·박영진·김의기·이경환 열사의 유가족도 모였다. 처음 유가족들은 분도빌딩에 있는 민통련 사무실에서 주로 모였다. 민통련에 있으면 소식을 빨리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박종만이 분신했을 때는 어용노동조합의 방해로 병원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장기표는 이소선과 함께 조인식을 찾아가 설득했다. 이때 유가족의 역할을 절실하게 깨달은 장기표가 이소선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유가족들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유가족의 모임을 처음으로 제안한 이는 민통련의 김도현이었다. 86년 3월께였다. “유가족들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서 활동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단체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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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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