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12월22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합의에 따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하자 유가협을 비롯한 민주시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했다. 박정기(오른쪽 둘째)·배은심(가운데)씨 등 유가협 회원들은 이날 오전 전 전 대통령이 풀려나오는 경기도 안양교도소 앞에서 항의시위를 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95
1996년 9월 사라졌던 송광영의 추모비는 11월 어느날 충청북도 음성군의 어느 과수원에서 발견되었다. 유가협 회원들은 경원대 학생들과 함께 음성으로 향했다. 추모비는 과수원 입구에 버려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글씨가 새겨진 곳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중장비를 이용해 원래 자리인 학생회관 앞으로 옮겼다. 경찰은 조사를 통해 정보사 군인 출신인 대학 학생과장과 장학복지과장이 탈취범임을 밝혀냈다. 과잉충성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었다. 추모비의 훼손된 부분을 다듬었지만 원래 상태로 복구하긴 어려웠다. 도난당한 지 82일 만에 추모비 제막식이 다시 열렸다. 유가협은 ‘송광영 추모비 도난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비석 아랫부분에 두 줄의 글을 새겨넣었다. “이 추모비는 1996년 9월22일 탈취된 뒤 61일 만에 되찾아 다시 세우다. 1996년 12월13일.” 박정기는 세상을 떠난 이오순을 떠올리며 혼잣말했다. “광영 어머니, 어머니에게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 뻔했는데, 이제 어머님을 찾아뵈어도 떳떳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인 12월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는 청와대에서 회동한 뒤, 두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특별사면과 복권을 발표했다. 사면의 명분은 국민 화합과 지역갈등 해소 등이었다. 김대중은 그동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사면·복권에 대한 찬성 의사를 밝혀왔다. 정부는 12·12, 5·18 관련자도 특별사면하기로 했다. 정치적 타협에 의한 결정이었고,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었다. 12월22일, 2년 남짓한 수감생활을 마치고 전두환·노태우는 석방되었다. 전두환은 안양교도소에서, 노태우는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검은 코트를 입고 교도소 정문을 나선 전두환은 석방 소감을 밝혔다. “최근의 경제대란으로 국민 여러분이 얼마나 놀라고 불안해할 것인지 걱정이 많습니다.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본인은 80년 9월에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당시는 경제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워 도탄에 빠져 있었지만, 우리 국민은 이를 극복하고 세계가 놀란 선진국가를 이룩했습니다.” 석방 소감은 자신의 업적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희생자와 국민들에 대한 사죄는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양교도소 앞엔 지지자들이 나와 있었고,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이 나붙었다. 서울 연희동 사저엔 방문객들과 축하 화환이 줄을 이었다. 의문사 진상규명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5공 정권에서 실종되고 사망한 이의 가족들은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었다. 대통령이 무슨 권한으로 석방한다는 것인지 박정기는 납득할 수 없었다. 박정기는 배은심 등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이날 오전 7시 안양교도소 앞에 도착했다. 유가족들은 석방 반대 집회를 열었다. 유가협이 준비한 피켓과 펼침막엔 “전두환·노태우가 죽인 의문사 진상규명”, “산 자여 따르라”고 적었다. 유가족들은 석방을 저지하기 위해 교도소에 진입하려 했지만 경찰들이 막고 있었다. 전두환이 기자회견을 할 때도 접근할 수 없었다. 유가족들은 ‘의문사 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쳤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전두환을 태운 차가 교도소를 빠져나가려 하자 박정기 앞에 서 있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전두환이 나온다!” 박정기와 유가족들은 소리를 듣고 우르르 몰려갔다. 학살자의 차가 교도소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박정기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달걀을 들어 차량을 향해 던졌다. 박정기도 다급하게 달려가며 외쳤다. “(석방)안 된데이! 이래선 안 된데이!”
|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