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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13 19:45 수정 : 2012.08.14 19:50

1994년 3월7일 필자는 통일부총리에서 물러난 지 2개월 남짓 만에 종합유선방송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직접 전화로 임명을 통보한 김영삼 대통령은 오인환 공보처 장관에게도 필자를 잘 도와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사진은 93년 방송의 날 기념행사 때로, 왼쪽 둘째부터 강성구 <문화방송> 사장, 홍두표 <한국방송> 사장, 김 대통령, 오 공보처 장관.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67

1994년 1월22일 청와대 조찬에 다녀온 뒤 요즘 정계에서 회자되는 세계화 문제가 나의 지적 호기심과 함께 근심을 자극했다. 김 대통령이 세계화라는 화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2월28일 <한국방송>에서 강연 초청을 받아 세계화에 대한 내 견해를 소개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서는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 견주어 많이 뒤떨어졌다. 그래서 기껏해야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받았지만, 군사권위주의 정치로 인해 정치적으로는 후진국으로 낙인찍혔다. 인권 유린에서도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정보화 물결과 세계적 탈냉전 흐름이 21세기 앞두고 거세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우리 민족과 국민에게 커다란 도전이요 기회다.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우리가 앞서 나갈 수 있다. 또 앞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민정부는 이런 정보화 비전이 없는 듯하다. 정보화로 21세기 문은 열릴 것이고, 냉전 체제의 해체로 20세기의 문은 닫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문을 적극적으로 활짝 열어놓을 일꾼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20세기 냉전체제의 문을 한사코 더 열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한국의 이념적 러다이트(신기술 반대자)들의 못난 모습이다. 딱한 몰골이다.”

3월7일 나는 종합유선방송위원회(KCCC)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앞서 3월2일께, 김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위원장 자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21세기의 새 역사를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 기능을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즐겁게 그 자리를 맡기로 했다.

바로 다음날 연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일보> 기자가 다소 비꼬는 어투로 질문을 했다. 부총리를 지낸 분이 종합유선방송위원장이 된 것은 ‘거물’에게는 격이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였다. 나는 “사람이 격의 주인이지, 격이 사람의 주인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앞으로 종합유선방송의 위상을 높이는 데 노력하겠다고 했다. 위원회는 프로그램 심의 이외에 케이블 티브이 사업자의 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프로그램 공급자(PP)와 케이블방송 운영자(SO)의 질 향상과 더불어 사업자들 사이의 상호협조가 요청된다고 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지적이었다. 이런 나의 발언을 일부 언론은 위원회 업무를 규정한 종합유선방송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나의 종합유선방송위원장 취 임을 관심사로 보도하자, 공중파(지상파) 방송을 관장하는 한국방송위원회(KBC)는 다소 긴장하는 듯했다. 김창열 선생이 위원장이었는데, 평소 나는 그 인품과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듣자니, 한국방송위원회가 뉴미디어인 위성방송을 다루겠다고 한단다. 새로운 방송매체는 마땅히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맡아야 할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다소 두 위원회 사이에 긴장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염려했다.

3월10일 서울대 사회학과 동문인 이상희·유재천 교수와 함께 시내 중식당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서울대 사회대 교수 시절, 휴게실에서 정치·경제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백가쟁명 식으로 표출하곤 했던 단골손님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김 대통령이 김만제 박사를 포항제철 사장으로, 김경원 전 전두환 대통령 비서실장을 특정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대해 교수들이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문민정부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인사라는 것이다. 그런 말에 나는 또다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3월11일 오인환 공보처 장관과 오찬을 함께 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 오 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니 대통령이 나를 잘 도와주라고 당부했단다. 이때는 <한국방송>, <문화방송> 같은 공중파를 관리하는 방송위원회가 있었고, 새로운 방송매체인 케이블의 방송위원회가 별도로 발족되었다.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적극적이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나는 80년대 후반 한국방송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대 교수 신분으로 민주당 몫의 방송위원을 맡았다. 한승헌 변호사도 평민당 몫의 방송위원이었다. 그때 나는 야당의 정책을 견지하는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아마도 이 경험을 대통령이 기억하고 내게 그 자리에 앉힌 것 같았다. 21세기 방송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될 것이므로 새 정보화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소중한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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