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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15 19:53 수정 : 2012.10.16 08:19

1997년 5월17일 김영삼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가 한보특혜비리 사건과 관련해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구속됐다. 사진은 5월20일 수의를 입은 김씨가 보강수사를 받기 위해 대검에 출석하는 모습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10

1997년 2월15일, 미국 여행 중에 북한의 노동당 고위 인사이자 주체사상 이론가인 황장엽 국제담당비서가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문민정부가 기획한 사건이고, 이로써 남북관계가 새로운 차원에서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82년 귀순해 정착해 살던 북한 최고위층의 친인척 이한영의 피살사건으로 뒤숭숭한 때라 황씨의 탈북이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는 이한영 피살과 황장엽의 기획탈북이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한 포용정책을 방해하는 사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를 계기로 한국내 반북 감정을 부풀리고 부추기는 사태를 경계하는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뉴욕 타임스>가 이 두 사건으로 문민정부가 지금 겪고 있는 당혹스러운 부패 스캔들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냉전식 잔머리 굴리기요, 꼼수를 쓰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한번 부끄러웠다. 이것이 ‘와이에스’다운 과감한 대북정책이라면 두고두고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할 것 같다. 황장엽은 김일성 주석이 생존했을 때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김정일이 집권하자 심각한 푸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망명을 했다면 그는 앞으로 김정일에 대한 비난을 계속할 것이고, 결국 남북관계는 확실하게 악화될 터이기에 걱정스럽다.

2월25일, 문민정부 출범 4돌을 맞았다. 오늘 오전 김영삼 대통령은 텔레비전을 통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국민 앞에 사과한 것이다. 지난 4년간 평화는 더욱 멀어지는 듯하고, 민주화는 엉거주춤하며 민생고는 깊어가는데 부패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모습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와이에스가 더욱 초라하고 외로워 보인다.

2월27일, 김 대통령의 사돈인 김웅세 롯데월드 사장과 오찬을 했다. 최근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소산(김현철)이 찾아와 지난날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사과했단다. 2년 전쯤인가, 김 대통령 앞에서 장인을 ‘이 사람’이라 칭하면서 장인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 소산은 오만불손했단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설사 장인이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도덕이나 상식으로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와이에스도 이제 와서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했단다. 어쩌겠나, 장인이 사위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것이 가족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날 저녁엔 70년대 외롭고도 고통스러운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기독자교수협의회 동지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이문영·현영학·김용준·노명식 선생 등과 지난날을 회고하고 서로 위로했다. 우리는 변하지 않고 우정과 의리를 지키고 있는데, 왜 정치에 몸담고 있는 민주화 동지들은 그렇지 않은지 답답하다고 했다. 특히 새로운 한국을 세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문민정부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 것이 정말 우리 모두에게 아쉬움과 분노를 함께 안겨주었다.

3월19일, 김 대통령이 국가 공권력을 아들인 소산에게 나눠준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한보 비리 사건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다. 심각한 국가기강의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소산의 왼팔 노릇을 했다는 박경식이란 의사(비뇨기과)가 베이징에 가서 황장엽을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만에 하나 황의 기획탈북에 소산이 관여했다면, 이야말로 국가 최고 공권력의 사적 남용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이런 심각한 사태가 민주정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도 나는 이를 믿고 싶지 않다.

한완상 전 부총리
5월17일, 17년 전 내가 남산 지하실로 끌려갔던 바로 그날이다. 하필 이날 끝내 소산이 구치소에 갇혔다. 이 무슨 얄궂은 역사의 곡절인가. 문민정부 출범 때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92년 12월 모두들 대선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을 때 이미 와이에스의 맏사위는 처남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을 예감하고 심각하게 염려했는데,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은 진정 그것을 몰랐단 말인가. 대통령 아들이 대통령의 명예뿐만 아니라 문민정부의 본질과 명예까지 훼손하도록 모두들 수수방관만 했단 말인가. 하기야 소산의 무소불위 힘을 빌려 신세를 진 이들이 한둘이 아닐 터, 누가 감히 그를 관리할 수 있었겠는가. 이 순간 나는 맏사위가 주고 간 지침을 새삼 떠올리며 가슴을 쳤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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