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중순 필자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보수세력과 언론으로부터 ‘창발성 교육’이란 용어를 두고 또 한차례 색깔론에 시달렸다. 그러나 3월17일 김대중 대통령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청와대 첫 업무보고(사진)를 만족스러워하며 격려함으로써 필자에게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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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50
2001년 3월6일 <조선일보> 사주인 방우영 회장과 오찬을 했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박영식 전 교육부 장관이 주선한 자리였다. 마침 며칠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조선일보>에서 공교육 붕괴와 교육이민 등의 문제를 꼬투리 삼아 교육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들은 참이었다. 방 회장은 어릴 적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신앙 교육을 받았으나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했다. 하기야 방 회장은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 나는 그의 매부인 연동교회 김형태 목사를 좋아하고 그의 열린 신학을 존경한다고 했다. 내가 진보적인 사고와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마르크시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믿는 예수님이 참으로 진보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당하게 착취당하여 가난하게 된 사람들, 포로처럼 갇혀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 가난해서 질병에 걸려도 건강을 되찾지 못하는 환자들, 지체 장애인들, 소외된 자들의 아픔을 덜어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설명했다. 그런데 분단 현실에서 예수 따르미들이 좌파로, 공산주의자로, 친북세력으로 부당하게 낙인찍혀 억울한 고생을 한다고 했다. 이런 낙인찍음에 ‘조선일보’의 역할이 있다고 넌지시 얘기했더니 그는 신문사 운영과 특히 보도, 논평 등에 자기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한 가지만이라도 올바른 인식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것은 자유·정의·평화·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힘쓰는 지식인들, 종교인들, 학생들을 색깔칠로 통제하는 일에 언론이 나서지 말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또 기독교 신자들, 아직도 여러 점에서 부족한 크리스천의 행동을 좌파로 낙인찍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월15일. 보수적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서 ‘창발성 교육,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모레 교육부 업무보고 자료에 사용한 창발성이란 용어를 두고, 북한에서 주로 쓰는 개념이니 검증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한 데 대해 국민 앞에 해명하고 사과하라는 내용이다. 나는 보고를 받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다만, 그때까지 북한에서 그 용어를 우리보다 더 애용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설사 그렇다 해도, 같은 용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같은 색깔로 시비한다면, 북한의 국가 명칭과 같은 이름인 ‘조선’일보의 사상도 이상하단 말인가. 실제로 1950년대 초 이승만 전시내각의 공보처장이었던 김활란 이화여대 총장이 ‘조선일보’의 제호가 북한의 국호이니만큼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기까지 했다. 격론이 벌어졌지만 ‘일제 때부터 있던 고유명사이므로 조선이면 어떠냐 한국이면 어떠냐’는 이승만 대통령의 결론에 따라 그대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3월16일 교육부 이름으로 ‘창발성은 국어사전에 등록된 용어로 북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요지로 간단명료한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예상대로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도 자사 월간지 창간 1돌 심포지엄에서 ‘창발’을 몇 차례 강조한 적이 있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김용갑 의원은 “북한 용어까지 쓰는 것만 보아도 한 부총리의 친북·좌파적 편향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한 부총리는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교육 부총리 직을 물러나라”고 새삼 공격했다. 그의 조건반사적 냉전 반응이 바로 교총의 의도를 잘 대변해준다. 정말 그들 사고의 수준이 한심하다. 3월17일. 마침내 청와대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업무보고를 했다. 나는 ‘창발성 논란’을 없던 일로 치고 차분히 보고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보고를 들으시고 격려해주셨다. 교육부에 큰 힘을 실어준 셈이다. 그런데 내 어깨는 더 무거워지는 듯했다. 우선 이 방대한 업무들을 과연 보고한 대로 내가 실천해낼 수 있을지 두렵다. 또 하나 대통령의 격려가 수구언론의 반디제이 정서를 더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냉철하게, 합리적으로, 점잖게 대응하면 될 것이다. 특히 색깔론적 비난과 비판은 교육의 고유 목적인 창발성 있는 인재, 온정성 있는 인간, 공익성 있는 인물을 길러내겠다는 나의 의지를 오히려 더 굳건하게 세워주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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